1919년 4월 13일, 이동녕(李東寧), 이승만(李承晩), 안창호(安昌浩) 등 독립투사들은 나라의 자주독립을 이루기 위해 중국 상하이(上海)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했다. 그로부터 약 100년이 지난 2013년 4월 13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는 청년들의 역사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역사토크콘서트 “역사가 그대에게 묻는다”가 개최됐다.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가야금 선율로 막을 올린 역사토크콘서트, 그 무대 위로 반가운 인물이 올랐다. 2005년 KBS 드라마 <해신>에서 ‘염장’역을 맡고, 2006년 MBC 드라마 <주몽>에서 주인공 ‘주몽’ 역을, 그리고 2008년 KBS 드라마 <바람의 나라>에서 ‘무휼’ 역을 맡아 열연했던 배우 송일국씨다.
사극과 인연이 깊기 때문일까. 역사를 주제로 한 토크콘서트에서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이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토크콘서트의 메인 게스트로 나서기까지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송일국 씨는 팀장이다. 드라마나 연극팀의 팀장이 아니라, 역사대장정팀의 팀장인 것이다. 그는 12년째 대학생 64명과 함께 청산리 역사대장정을 떠나고 있다. 전국에서 모인 남녀 대학생들은 송일국 단장과 함께 12일 동안 고구려 유적지, 백두산, 항일 유적지, 발해 유적지를 돌아보며 지금은 우리 땅이 아닌 그 곳에서, 항일무장투쟁의 역사를 떠올리고 항일독립선열들의 발자취를 회고한다.
“역사가 그대에게 묻는다”는 올해 제12회를 맞는 청산리역사대장정 모집에 앞서, 역사에 대해 쉽고 즐겁게 알아갈 수 있도록 마련한 행사다. 지루한 역사 강의를 듣기보다는, 음악과 영상을 통해 역사를 자연스럽게 익히자는 취지로 사단법인 백야김좌진장군 기념사업회에서 주최했다.
1막 1장, 역사 전도사로 청산리역사대장정 단원들을 전두지휘하다
▲ 배우 송일국 ⓒ 노아름
Q. 역사 토크콘서트를 앞둔 소감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오늘 개최되는 역사토크콘서트는 참 특별하다. 모든 참여자들이 재능기부를 해 줬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 사회를 보는 이하정 아나운서는 대장정 6회 단원으로 참가해 각별하다.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다.
Q. 청산리역사대장정이 올해로 12회를 맞는다. 10년 이상 지속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애정을 가지고 매년 진행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역사의 현장을 직접 찾아 책에서는 배우기 힘든 느낌을 받고 돌아온다. 백두산 위에 올라 애국가 한 번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태극기 한 번 제대로 펼치지 못한 채 내려 올 때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처음부터 주체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1회 때 참여하고 2~5회 때는 신인의 입장이라 작품 활동을 하느라 참여하지 못했다가 6회째부터 다시 참여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회차를 거듭하면서 느끼게 됐다.
대장정을 통해 내가 나라사랑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청년들에게도 현장에서 받을 수 있는 느낌을 전해주고 싶다. 애국가 제일 처음 구절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시작한다.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 올라 가슴 벅차오르는 감정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느껴보고 싶다.
Q. 전국대학생을 대상으로 단원모집을 한다. 젊은 청춘들을 데리고 원정을 떠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무엇인가?
자라나는 청춘에게는 그들의 가슴에 씨앗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고 꽃과 열매를 맺어 주변 사람에게 전해질 때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생은 사회의 씨앗이다. 중요한 시점에 있는 청춘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Q. 국민들이 역사에 더 관심을 갖기 위해서는 정부 기관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특히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런 부분에 신경을 써 줬으면 좋겠다는 부분이 있나?
글로 배우는 것보다 현장에 가서 부딪혀보면 느끼는 것이 다르다. 그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황당한 얘기를 들었는데, 한 초등학생에게 삼일절을 읽어보라고 했더니 3.1절(삼점일절)이라고 읽고, 이완용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독립운동가 아니냐는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눈으로 한 번 보는 게 중요하다. 아이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막 2장, 역사와 문화 콘텐츠 드라마가 만나다
Q. MBC 드라마 <주몽>으로 유명세를 탄 만큼 작품에 대한 얘기를 안 해볼 수 없을 것 같다. 시대극에 많이 출연하시는데, 역사를 바탕으로 한 작품에 남다른 애정이 있는 것인가?
현대극도 많이 연기하지만, 사극이 더 잘 알려진다. (웃음) 연기를 하다보면, 사극 작품이 나에게 그냥 오는 것 같지는 않다. <주몽>은 각별했다. 우리나라 영문명 Korea이지 않은가?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고구려에서 그 이름을 따 온 것이고 고구려는 우리 민족의 자부심이다. 주변국과 역사 분쟁을 하느라 민감했던 시기에 드라마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역사의식을 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뜻깊었다.
Q. 안중근 의사를 다룬 역사극 <나는 너다>에 출연하기도 했다. 당시에 안중근 의사 역할도 그냥 오게 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다.
2010년에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을 기념한 역사극 <나는 너다>에서 안 의사와 그의 아들 안중생 역할로 1인 2역을 맡았다.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연극배우 윤석화 씨가 직접 연출한 연극인데, 이 연극은 안중근과 그의 가족이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겪어야 했던 시대적 풍파와 인간적인 고뇌를 담아낸 작품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당시 그 역할이 그에게 그냥 온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연극 마지막에 안중근은 이렇게 외친다. “대체 누구를 위해서 가족을 희생하고 우리를 이 고통에 빠뜨렸나요?”여기에 대한 대답이 기가 막히다. “너를 위해서”라고. 이 대답이 많은 것을 함의한다고 생각한다. 그 분들이 떳떳하게 살아주셨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게 아닐까.
2막, 문화 전도사로 한국의 아름다움을 전하다
Q. 결혼할 당시 전통 혼례를 치렀다고 알고 있다. 당시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는데, 전통 혼례를 치르기까지 많은 고민을 거쳤을 것 같다.
우리도 전통 방식이 있는데 왜 굳이 외국의 턱시도, 드레스를 입어야 하나 의문이 들었다. ‘결혼 문화를 바꿔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로도 결혼식을 멋지게 치러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혼을 전통 혼례방식에 현대의 주례를 혼합한 퓨전 방식으로 진행했다. 하객들에게 전통 혼례의 취지를 설명한 책자를 제작해 하객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송일국 씨의 세 아들, 대한이 민국이 만세 ⓒ 노아름
Q. 세 쌍둥이를 출산해 아이들의 이름을 각각 대한, 민국, 만세로 지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각별한 것 같은데, 개인이 나라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대장정을 통해 나라사랑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인생의 목표가 바뀌었다. 내 인생의 목표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부모님께 잘하고, 아내에게 잘하고,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게 내 일에 충실하게 살자는 것이다. 일제강점기나 난세가 아닌 이상, 사람들이 나라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가정을 행복하게 꾸리고 사는 것이 바로 나라사랑이라고 생각한다.
Q. 문화체육관광부 올해 슬로건이 ‘문화가 있는 삶’ 만들기다. 송일국 씨는 2011년에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는데, 문화예술상 수상자로서 ‘문화가 있는 삶’을 만들기 위해 개인이 노력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다양한 작품을 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대작 뮤지컬도 좋지만 작은 연극도 즐기며 편중되지 않은 문화생활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 개인의 삶도 다채로운 문화로 채워질 것이고 문화예술인들의 삶도 더 나아질 것이다.
Q. ‘문화가 있는 삶’을 만들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노력해야할 점은 무엇일까?
평소에 사극을 찍으며 드라마 세트장에 대해 아쉬움이 많았다. 사극이 일본에 수출된 후로 팬미팅을 해보면 90%가 일본분이다. 한국드라마를 사랑해주시는 외국 팬들은 한국에 방문할 때 본인이 좋아했던 드라마 세트장에 가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팬들에게 가보라고 권할만한 세트장이 없다. 드라마를 종방 한 후 세트장을 부숴버리거나 그나마 남아있는 세트장이라 하더라도 사후관리가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극 세트장 건설 및 관리를 방송국이나 지방자치단체에 의존하기보다는 국가 차원에서 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다. 문화콘텐츠 관리가 잘 되어야 한류도 지속되지 않을까.
세트장 중에서는 드라마 종영 후 하루에도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 찾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는 곳도 있다. 전북 부안에 위치한 KBS <불멸의 이순신> 세트장이나 전남 완도의 MBC <주몽>, KBS <해신>이 세트장이 한국드라마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하지만 관리가 부실한 세트장의 경우는 폐허가 되어 관광객들이 찾기에 민망할 정도다. 한국 드라마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드라마 촬영장을 찾은 이들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역사는 시대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후대 사람들은 선조들의 행적을 보고 배워 오늘을 만들어간다. 따라서 역사공부가 중요한 이유를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지금 어떻게 행동해야하는가에 대한 지침은 역사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사는 지침서의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그대로 문화가 된다. 과거 선조들이 살았던 어제의 삶은 그 자체로 전통문화가 되어 현대에 전승되고,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 즐기며 만들어낸 것은 K-pop, 한국드라마가 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간다.
‘문화가 있는 삶’을 만들기 위해 각자의 마음속에 작은 씨앗을 키워보는 것은 어떨까. 역사의식이 뛰어난 씨앗, 우리문화를 사랑하는 씨앗이 자라 꽃을 피운다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찰 것 같다.
가는 길마다 벚꽃이며 개나리가 한창인 요즘. ‘길 위의 시인’ 신정일(60) 씨를 만나기 위해 전주시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버드나무 잎이 길게 드리운 길을 지나 바람에 따라 나부끼는 버드나무 잎을 바라보며, 전주천(川) 줄기를 따라 걸었다.
“걷기는 내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왔다.”는 신정일 씨. 그를 두고 시인 도종환은 ‘길의 시인’이라 불렀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강과 길의 철학자’라 불렀다. 또한, 그가 10권에 달하는 신(新)택리지를 저술했을 때, 시인 김용택은 그를 두고 ‘현대판 김정호’라 일컬었다. 올해로 걷기인생 45년인 신정일 씨, 그를 만나 강과 길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강과 길의 철학자, 그에게 걷기란?
1969년 10월, 15살 소년은 대구에서 진안까지 꼬박 일주일을 걸어서 이동했다. 스님이 되려고 출가했지만, 구례 화엄사 주지스님은 그에게 “너는 절에 있을 팔자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고향인 진안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차비가 없었다. 그는 다부지게 걸었다. 어쩌면 이때부터 그는 ‘걷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어느 곳부터 어디까지 걸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강, 금강, 섬진강 등 우리나라 10대강을 모두 걸어서 이동했고 산도 400여 곳에 올랐다고 했다. 특히 한강은 네 번이나 걸었지만 걸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고 했다. 걸으면서 느낀 생각을 정리해 책을 썼고, 직접 저술한 책이 한 두 권 모여 어느덧 50권에 이르렀다. 또한, 우리나라 산천의 아름다운 길을 발견하면 이를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안하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가 동해안 일대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해파랑길’이다.
▲해파랑길, 파란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뻥 뚤리는 것 같다.ⓒ신정일
그에게 “걷기란 무슨 의미인가?” 물었더니 “걷기란 삶이다.”라고 대답했다. 걷지 않고 떠오르는 생각은 믿지 말라며 사르트르가 “존재한다는 것이 걷는 것이다. 인간은 걸을 수 있는 만큼만 존재한다.”고 말했던 것을 또박또박 읊었다.
◀ 신정일(60) ⓒ노아름
-문화사회학자, 작가, 도보여행가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이사장
-황토현문화연구소 소장
-『가슴 설레는 걷기 여행』, 『느리게 걷는 사람』, 『다시 쓰는 택리지(10권)』, 『가치있게 나이 드는 연습』 등 50여 권 저술
Q. 현대인들에게 걷기는 어떤 가치를 지닐 수 있는지 궁금하다.
우선 너무 바쁘게 살았기 때문에 걸으면서 내 몸과 내 정신이 한가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걷기는 내가 나를 만나는 지름길이다.
Q. 현대인들이 내가 나를 만나는 걷기를 하고 있다고 보는가?
건강을 위해 걷는 사람들은 늘었다. 하지만 건강만을 위해 걷다보니까, 탈레반처럼 얼굴을 싸매고 한강변을 걷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전투적인 걷기를 하기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걸으면서 한가롭게 생각하는 시간도 가졌으면 한다.
Q. 좋은 길이란 어떤 길일까?
최신시설로 보수한 넓은 길이 꼭 좋은 길은 아니다. 길은 새로운 시설을 만들 것이 아니라 예전 길을 찾아 보수할 때 더 좋다. 사람들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오솔길을 좋아한다. 그 길에 역사가 있으면 더 좋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유명해진 이유도 역사가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야고보가 걸어가던 길을 순례자들이 따라 걷다보니까 유명해진 것이다.
Q. 해파랑길이 2014년 완공 예정이다. 해파랑길도 좋은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해파랑길은 가는 길마다 역사의 현장이다. 화랑들이 걸어가던 길, 선비들이 걸어가던 관동팔경길, 낙동강변에서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길을 모두 현대인들이 걸을 수 있게 재정비했다. 우리땅걷기 회원들과 이미 두 번 완주했는데, 해파랑길에 오르면 빼어난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을 거다. 갈매기가 날아오르는데 종이학이 나는 것 같았다.
Q. 앞으로 걸어보고 싶은 길이 있나?
통일전망대 이후로도 북한으로 이어지는 길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삼일포, 총석정, 원산, 함흥, 두만강 1400km정도의 최장 길을 구상 중이다. 우리나라 땅 끝에서 북한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 스웨덴, 포르투칼 리스본, 아프리카 케이프타운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한반도에서 아프리카 케이프타운까지 걸어간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독서를 통해 얻은 철학은 내 삶의 근본
전주 진북동 자택은 책으로 가득했다. 니체, 키에르키고르, 사르트르, 카프카 등 철학자의 저서뿐만 아니라 직접 출판한 책으로 책장을 가득 채웠다. 그는 길 위에서도 자택에서도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동양사상에서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두고 길(道)에 비유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하지를 말라.’는 우리 속담도 모두 길을 따라 행동을 바르게 할 것을 주문했다. 어쩌면 신정일 씨도 사람답게 살기 위해 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 것은 아닐까.
▲자택에 걸려있는 현판과 서재 ⓒ노아름
Q. 도보여행을 하지 않을 때는 자택에서 책을 읽는다고 알고 있다. 책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하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감수성이 예민할 때 책을 연애하듯이 읽었다는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것 같다. 호롱불 밑에서 머리 태워가며 밤 새워서 책을 읽고는 했다. 이 때 철학, 역사, 문화, 문학 모든 것을 공부했기 때문에 많은 책을 쓸 수 있었다. 도보여행을 할 때도 책이 도움이 된다. 사람들이 나를 두고 ‘가장 감성적으로 답사 안내를 하는 답사가’라고 하는 이유도 책에서 전달받은 감성 덕분일 거다.
Q. 50여권에 달하는 저서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다시 쓰는 택리지(10권)』다. 이중환 『택리지』 이후 한반도 지형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냈다. 저술하면서 어떤 점에 강조점을 두었는지 궁금하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들 하지만 요즘은 2달만 지나도 강산이 변한다. 이중환이 당시 <택리지>를 저술할 때와는 많은 것이 변했다. 그때는 자료의 한계도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고 평안도, 전라도도 다녀오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북한도 포함하여 열권에 걸친 책을 저술했다. 강조점을 둔 부분은 ‘어디에 살 것인가’이다. 예전 선조는 경관 좋은 곳에서 살면서 자신의 심신을 단련하고자 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땅값 비싼 곳에서 집을 짓고 살고 싶어 한다. 이러한 부분을 꼬집고 싶었다.
Q. 길은 인생의 선택에 비유되곤 한다. 어느 길을 택해야할지 모르는 청춘들이 많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한마디 조언을 해준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
길은 잃을수록 좋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전체를 잃어보기도 해라. 길을 잃어야 새로운 길을 찾는다. 잃지 않으려고 하니까 잃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 “창조란 불행한 끝을 사이로 자신의 길을 공구해나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창조는 편한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고난의 길을 뚫고 나갈 때 비로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걷기여행 열풍이다. 전국 곳곳에 ‘걷기 좋은 길’이 조성되고 걷기여행을 안내하는 책자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국내를 걷는 것뿐만 아니라 단지 걷기위해 저 멀리 다른 나라로 떠나기도 한다. 사람들이 걷기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신정일 선생님께 “현대인들이 길 위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는 질문을 던졌고, 그는 “느리게 걷는다면 가능하다”고 답했다. 걸어가면서 산천의 웅장한 아름다움에 취해보기도 하고 작은 꽃을 바라보며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면 자연스레 해맑은 미소가 지어진다는 것이다. 문득 인터뷰에 늦을까 조바심을 내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시간에 쫓겨 여유를 갖지 못했던 나에게, 그는 “잠시 멈춰서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을 보아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을까.
눈이 보이는 정상 시력을 가진 사람을 정안인(正眼人)이라고 하고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맹인(盲人) 혹은 시각 장애인이라고 한다. 정안인은 시각을 통해 세상을 보고 느끼지만, 시각 장애인들에게 세상은 손끝의 촉각을 통해 느끼고 읽힌다. 세상을 볼 수 있는 이들과 촉각을 통해 느끼는 이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수년 째 그 길잡이를 자청하며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책을 만드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나누미 연구소의 문미희 소장이다. 서로의 시각을 ‘나누며’ 진정한 기쁨을 누린다는 <나누미 연구소>를 찾아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촉각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들
▲ 나누미 연구소가 위치한 <문화살롱 공>의 전경 Ⓒ문향진
Q. 나누미 연구소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요.
A. 2010년 ‘나누미 프로젝트’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보이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13권의 촉각 그림책을 만들었어요. 그 후에 촉각도서의 지속적인 보급과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나누미 연구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각 지역을 다니며 촉각 그림책을 만드는 교육을 하거나 도서관 등에서 워크숍을 열어서 지역 커뮤니티가 구축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그분들이 스스로 도서를 제작하고 보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인데, 일종의 문화운동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누미 프로젝트 : 2010년 지역문화 예술활동(경기문화재단), 2010년 실험적예술 및 다양성 지원 프로젝트(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사업을 통해 진행한 나누미 프로젝트에서 예술가, 자원봉사자, 시각 장애인과 학부모가 모여 시각 장애아동을 위한 촉각 그림책을 제작했다.
Q. 촉각 그림책은 무엇인가요?
A.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직접 만져보고 느끼면서 읽는 그림책입니다. 책을 읽을 때 이미지를 볼 수 없으니 만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에요. 예를들면 이야기에 동물이 등장할 때에는 그 동물과 비슷한 털을 이용해서 동물을 만들어요. 만졌을 때 ‘어떤 동물’인지 알 수 있게 하고, 상황을 설명해주는 점자를 그림 옆에 넣어주기도 하지요. 보이는 분들도 묵자(일반 글자)로 읽을 수 있도록 묵자와 점자를 함께 인쇄해서 책을 만들고 있어요.
▲ 나누미 연구소에 비치되어 있는 촉각 그림책 Ⓒ문향진
▲점·묵자 혼용페이지, 점자를 읽으면 ‘마이크를 누르면 음악이 나옵니다’라고 써있다.Ⓒ문향진
Q. 촉각 그림책은 시각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지는 거군요.
A.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지만 어른들이나 보이는 사람들 누구나 읽는 책이에요. 예전에 결혼을 한 후 실명하신 분을 만난 적이 있어요. 태어난 아이는 눈이 보이기 때문에 엄마한테 책을 읽어달라고 보챘지만 엄마는 책을 읽어 줄 수 없었죠. 이런 경우에 촉각 그림책이 필요하죠. 엄마에게 촉각 그림책을 전달해주면 형태를 만져보고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줄 수 있으니까요.
Q. 책은 누구와 만들고 있는지 궁금해요. 주로 시각 장애아동의 학부모님들과 함께 하시나요?
A. 처음에는 장애를 가진 아이의 어머니들이 참여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내 아이의 장애를 직접 느끼니까 그 분들이 책을 만들면 마음이 좀 더 담길 것 같았거든요. 실제로 보이지 않는 아이를 자녀를 두신 어머니들이 참여하고 나면 내 아이의 시각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고맙다고 하세요. 하지만 보이지 않는 자녀의 나이가 어릴수록 어머니가 아이를 돌보아야 할 시간이 많이 필요하잖아요. 아이를 돌보면서 책을 제작하는 것은 어렵죠. 그래서 계속 참여해달라고 부탁은 못 드려요. 자발적으로 봉사하며 참여의지가 있는 분들을 위주로 함께 책을 만들고 있어요.
▲ 어머니와 아이가 함께 만든 촉각 그림책 Ⓒ나누미 연구소
일본 치바현 맹아 학교 내에는 학부모들이 만든 촉각 도서가 만 권에 달한다고 한다. 시각장애아동이 학교에 갔을 때 어머니들이 모여 책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30~40년이 되다보니 이렇게 대형서고를 만들게 된 것이다. 지역별로 그룹이 생기고 지속적으로 책이 만들어지면서 좋은 책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지역 커뮤니티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기도 어렵고 수적으로도 매우 적다고 한다. 게다가 책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오래 걸릴 때에는 반년에서 1년이 걸린다. 한 사람이 책을 만드는 것에만 매달리면 1년에 10권이상도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여기에만 매달릴 수 없기에 많이 제작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만지는 그림책, 촉각 도서
어떤 어머니가 집에서 아이가 입던 옷을 활용해서 책을 만들어 오셨어요. 단추 채우기, 지퍼 올리기, 끈 매기 등을 내용으로 만들어서요.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아이는 길에서 신발 끈이 풀리면 가만히 서 있는대요. 엄마가 해줄 때까지요. 이 책은 직접 단추나 지퍼를 채우는 연습을 하도록 도움을 주는 책이었죠. 많은 이야기가 담긴 것보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만져보고 경험을 익힐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을 권장해요. 아이들이 자라다보면 그 시기에 맞는 책이 있어요. 그런데 보이지 않는 친구들은 그런 책이 없어서 그런 과정은 건너뛰고 학교에 가면 점자를 찍는 것부터 배워요. 교육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다보니 지능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교육의 속도가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조건을 맞추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나이 대에 어울리는 정보를 배울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들어서요.
- 문미희 소장 인터뷰 中
Q. 실제로 책을 보신(만져보신) 분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A. 형태적인 것은 정형화 되어 있어서 쉽게 받아들이지만 느낌(표면의 재질)에 대해선 섬세하고 예민해요. 예를 들면 색 같은 경우 보이는 사람에게 빨간색은 시각적으로 위험하다는 표시잖아요. 그래서 뾰족하고 거친 느낌의 재질을 선택했었어요. 또 일반적으로 초록색은 안전하다고 생각하니까 초록색은 매끈매끈한 재질로 책을 완성했죠. 그런데 보이지 않는 한 아이가 빨간색을 만져보고는 거칠어서 율동감이 느껴지기 때문에 앞으로 가야할 것 같다는 거에요. 우리는 초록색이 매끈하고 부드러우니까 장애물이 없다, 앞으로 가야한다는 느낌을 주려했거든요. 우리 생각과 실제로 만져지는 것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죠. 그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 책을 만들 때마다 더 고민하고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Q. 촉각 그림책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궁금합니다.
A. 초기에는 일본의 촉각 도서를 모델로 삼아서 종이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자꾸 넘기다보면 종이가 훼손이 많이 되더라고요.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종이보다 오래 보존 가능한 패브릭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브웨어라는 소재를 천속에 넣어서 천이 평평하게 유지되도록 페이지를 만들어요. 촉각 도서를 만드는 교육을 할 때에 기본적인 재료(책의 페이지가 되는 패브릭 등)는 선택해 주고 사물에 맞는 재질은 함께 고민해서 찾습니다.
Q. 책이 완성되면 판매가 되는 건가요?
A. 2010년에 진행한 나누미 프로젝트로 총 13권의 촉각 그림책이 제작되었고, 그 중 11권이 광주세광학교(시각 장애인학교) 도서관에 기증되었습니다. 판매가 되기는 어렵고 각 지역에서 교육했던 기관이나 도서관에 기증하여 대여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만드는 과정>
① 이야기를 창작한다. 숫자나 한글교육 등 기본적인 것이나 이야기를 만든다.
※기존에 있는 동화를 번안하면 내용이 많아서 이미지를 뽑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단순한 이야기를 추천!
② 이야기를 페이지에 맞게 나눠보고 8페이지 안쪽으로 구성한다.
③ 나눈 페이지의 이야기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결정한다.
④ 이미지에 맞는 재료를 찾고 제작한다.
(시각적인 형태 표현보다 만졌을 때 형태를 느끼기 적절한 재질의 재료 선정이 중요!)
⑤ 제작한 이미지 페이지들을 모아 제본한다.
⑥ 이야기를 타이핑한 점자와 완성된 이미지를 시각장애인 분들과 소장님이 직접 검수한다.
⑦ 묵자와 점자의 인쇄지를 페이지에 옮겨 붙인다.
▲ 직접 만졌을 때 형태를 확실히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치마 속에 다리의 윤곽선이 만져지도록 제작한 그림책. Ⓒ문향진
▲ 지역커뮤니티, ‘광주 나누미 어머니회’에서 촉각 도서를 만드는 모습 Ⓒ나누미 연구소
문미희 소장은 정안인과 시각장애인을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표현한다. ‘장애’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어감의 불균형성을 좀 더 동등한 위치로 돌려놓으려는 배려가 느껴지는 표현이었다. 그녀의 표현은 옳다.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물리적인 시각에 한정될 뿐 서로 다른 부류로 나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 사이의 교감(交感)
Q. 본래 직업은 설치 미술가로 알고 있어요. 촉각 그림책을 어떻게 처음 접하게 되었나요?
A. 일본으로 촉각 그림책을 연구하러 갔던 다큐멘터리 감독님에게 책을 선물 받았어요. 감독님께서 저의 작업을 보시고 촉각 그림책을 한 번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권해주셔서 처음 접하게 되었죠. 처음엔 제가 작가이다 보니 작업으로 풀어보면 어떨까 했어요. 책을 만들려는 목적은 아니었고 ‘손으로 만지는 시각’을 경험하면 좋을 것 같았거든요.
▲ 감독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1996년도에 제작된 일본의 촉각 그림책 Ⓒ문향진
Q.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책을 만들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A. 촉각 그림책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일본에 워크숍을 받으러 갔는데 보이지 않는 화가와 보이는 화가 두 분이 공동 작업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어요. 보이는 화가가 어떤 그림의 윤곽을 그리면, 보이지 않는 화가가 만져보고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었는데요. 흔히 우리는 그림을 그릴 때 외형적인 것을 그리잖아요. 보이는 화가는 어떤 사람이 컵에 빨대를 꽂아서 예쁘게 무언가를 마시는 것을 그렸어요. 그런데 보이지 않는 화가가 그린 그림엔 사람은 없고 음료에 기포와 그 음료가 사람 목을 타고 위 속으로 넘어가는 것이 표현 되어있더라고요. 그 때 ‘아, 저 분들은 우리가 보지 않는 내면을 보는 시각을 가졌구나. 저 시각을 내가 배워야 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려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시설에 들어가 봉사를 시작했죠. 그리고 욕심을 버렸어요. 그들을 실제로 만나면서 이건 작업으로 풀게 아니라 책을 만들어서 많이 보급을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설에 있는 자원봉사자들과 보이지 않는 자녀를 둔 어머니들과 같이 책을 만들고 시설에 책을 기증했어요. 그게 시발점이 되었고 그 분들이 지속적으로 책을 만들고 싶다고 하셔서, 팀을 꾸려놓고 지역적으로 돌아다니며 문화 운동 형태로 움직이게 되었죠.
Q. 책을 만드는 것을 ‘문화’로 만드는 것은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요. 힘든 점은 없으세요?
A.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갖는 분야가 아니라서 알려지기가 힘들어요. 제가 여러 지역별로 돌아다니며 하는 이유는 많은 분들이 이 책의 중요성을 경험하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나누미 연구소에 소속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같이 활동하는 것은 아니고, 제가 프로젝트를 가져오면 함께 활동한 후에 다시 흩어지니까 혼자 하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그러다 보니 여러 지역을 혼자 다니는 것이 무리가 있습니다. 지역별로 책을 만드는 팀을 만들어 놓고 싶지만 지속적으로 끌고 갈 사람이 지역 내에 없으니 유지되기가 어렵죠.
▲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든 이보리 양의 촉각 그림책 Ⓒ문향진
나는 왜 시각장애인이 되었을까. 태어나면서 부터라는데……
할머니는 “강아지, 강아지”하며 날 품어주셨고
아빠는 내 목소리처럼 내 곁에서 지켜주셨지만
동생이 콧노래 부르며 들길을 홀로 갈 때
나는 누군가가 데리고 가야만 하는 시간들 속에서 알았다.
내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엄마, 아빠는 공부하라고 날 학교에 남겨주고 떠나셨다.
6살 어린 나는 너무 무서워서 목이 터져라 울었다.
눈물이 안 나올 정도로 울었다.
눈물로만 기억되는 엄마. 그 뒤로는 볼 수가 없었다.
이 세상 안 봐도 좋으니 제발 오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난 가시나무가 되었다.
가시나무 나는 아빠를 마구 찔렀다.
모든 것이 하기 싫은 고통들
뛰쳐나가고 싶은 극단적인 생각들 중에 보컬을 만났다.
노래!
노래는 나의 이야기였고 놓쳐서는 안 되는 눈이었고,
새로운 시작을 주는 것이었다.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준 희망.
나의 보컬.
나는 달라졌다. 환한 미소가 날 찾아왔고
아침에 눈뜬 내게 ‘예비 아티스트~’라고 속삭이는 나.
나는 노래로 희망이 되고 싶다.
여러분!
내 노래를 들어줄래요?
- 이보리 양의 촉각 그림책 「내 노래를 들어줄래요」 전문
Q. 어려운 점이 많은데도 계속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특별한 힘이 있으신가요?
A. 실제로 그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안 했을 것 같아요. 봉사를 했던 시설에서 가수가 꿈인 친구를 만났어요. 노래를 하고 싶은데 학교에선 음악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죠. 시각 장애인 학교에선 사회에서 생활 할 수 있도록 주로 안마 기술을 가르치거든요. 그 친구는 밴드 활동을 취미로 했지만 진로를 좌우지 할 수 있을만한 교육을 받기는 어려웠어요. 서울에 한빛 맹아학교라고 음악교육이 특화된 학교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그 학교를 가고 싶어 했어요. 언제든 피아노치고 싶을 때 음악실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며 꿈에 부풀어 있었죠. 그 모습을 보면서 그 친구가 잘 배워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친구들은 예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한데 기회를 제공해주고 싶었어요. 그때 ‘내가 한 번 해볼까’하는 생각을 했죠.
▲ “만약 미술로 작업을 했다면 작업으로 끝났겠죠. 저에게는 이것이 단지 경험이나 체험으로써의 참여가 아니라 작가로서 삶에 전환점이에요. 큰 이변이 없는 한은 끝까지, 계속 갈 생각이에요.” Ⓒ문향진
Q.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A. 나중에 열심히 해서 장애가 있는 아이들 위한 예술 교육센터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조금 더 나중에 큰 꿈이에요. 그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도 도움을 주고 싶은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큰 꿈에 문턱까진 못가더라도 계속 책은 만들고 싶어요. 외국 자료를 수집하던 중에 집안 한 벽면이 모두 촉각 도서로 꽉 차있는 사진을 봤어요. 개인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너무 부러웠어요. 센터까진 못 만들어도 제 생애 그 정도는 만들어보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관심이 많이 필요해요. 나눔이라는 것은 사실 나의 기쁨을 위해 나누는 거잖아요. 내가 기쁘지 않으면 나눌 수 없죠. 나눔이라는 것은 일방적으로 주는 게 아니라 저도 얻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 시각을 그분들에게 주고 그분들도 손으로 보는 시각을 저한테 주고. 참여하시는 분들이 단순히 봉사로만 여기지 않고, 같이 기쁨으로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촉각 그림책은 복지와 예술의 분류가 명확하지 않아서 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기가 어렵다고 한다. 후원이 없으면 연구소에서 계획한 일들은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야기를 전하는 내내 차분한 그녀의 목소리에는 조급함보다는 인내가 묻어있었다. 그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느껴진 그녀의 마음의 온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경솔하게 서두르려 하지 않는 그녀는 느리지만, 분명 비등점을 향해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었다.
물은 100도가 되면 그 때부터 끓기 시작한다. 0도나 99도나 온도의 차이는 있어도 끓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실은 미온수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겐 여전히 차가운 물처럼 보일지 모른다. 나누미 연구소에서 진행되는 일이 그렇다. 지금 나누미 연구소는 ‘끓고있는’ 상태가 아닐 뿐 몇 도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그리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이야기가 전해진다면, 언젠가는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100도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마음이 움직인 단 한명의 공감으로 가능할지도 모른다. 딱 1도만큼의 공감,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촉각 그림책에 대한 관심이나 제작이 ‘문화’가 되어, 나누미 연구소의 아름다운 마음 나눔이 세상을 적시는 따뜻한 온수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이야기 시작과 동시에 개구진 웃음을 지으며 능청스레 말하는 그에게서는 아직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도저히 만화에서 드러나는 진중함과 무게감을 찾아볼 수 없어 의아함까지 들던 도중,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의 눈에 번뜩이는 섬광이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작품 결말 논란에 대한 물음에는 ‘독자의 해석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고 꽤나 속 깊은 이야기를 하기도 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다채로운 색을 보이던 그. 건방짐과 장난기로 무장한 이 청년은 어쩌면 생각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속에 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데뷔와 동시에 독특한 그림체와 신선한 스토리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네이버 월요 웹툰 ‘스펙트럼 분석기’. 완결 이후에도 독자들의 화제의 중심에 서있는 자칭 겸손한 천재 작가 ‘도국’, 그의 스펙트럼을 분석해보자.
겸손한 천재 작가? '도국'의 스펙트럼을 분석하다!
“상상이 취미예요.”
▲웹툰 작가 도국 ⓒ이유지
기발한 상상력을 가진 작가님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지금 생각해도 저는 글을 잘 쓰거나 그림을 특출하게 잘 그리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상상력만큼은 스스로도 높은 점수를 주거든요. 보통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위인전 같은 책을 사주잖아요? 그런데 저희 가족들은 게임을 좋아해서 제가 다섯 살 때부터 게임을 했어요. 정말 오래 게임을 했는데, 게임 사이트 접속일이 2000일이 넘어요. 단순작업이 많은 온라인 게임보다는 스토리가 있고 연출력이 좋은 영화 같은 전문게임들을 접했는데, 그 때 아마 자연스럽게 공부가 된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만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솔직히 어렸을 때 만화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자연스럽게 그림을 접하게 된 계기는 두 가지가 있는데요, 어릴 때 빵에 들어있던 캐릭터 스티커들을 모으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친구 것을 베껴서 그림만 연습장에 모아뒀어요. 이게 첫 번째 계기예요. 그리고 제가 원래 운동을 전공했어요. 그렇게 안보이는 거 아는데(웃음), 유도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심하게 다쳐서 선수생활을 못하게 되었고 재활치료를 받게 됐죠. 병원에선 오른손을 많이 써야 되니 글씨 연습을 하라고 했는데 그게 싫어서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다 다시 또 그림에 흥미를 갖게 됐죠. 또 열심히 그리게 된 계기가 있는데, 중학교 때 게임시디를 사기 위해 돈을 벌고 싶었어요. 그때 시디가 오만원 정도 했는데 큰돈이잖아요. 그래서 ‘그림으로 사업을 해보자!’는 생각이 든 거죠. 교과서 표지를 지우개로 지워서 거기에 친구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고 팔았어요. 나중에는 흑백 오천원, 컬러 만원까지 받았죠. 저를 따라서 그림 그리는 친구들도 생길 정도여서 정품 인증 사인도 만들고 그랬어요. 지금은 그 때 만들었던 사인을 까먹어서 사인회 직전에 다시 만들긴 했지만요(웃음).
▲6화 작가의 말 ⓒ네이버
외부에 보이는 이런 모습은 의도된 건가요? 실제 작가님은 어떤 성격이신지 궁금해요.
실제로 싸가지가 없어요. 그런데 그걸 감추려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고요.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면 사람들이 인내하는 범위가 넓어질 테니까. 원래 저는 성격 때문에 친구가 별로 없었어요. 저를 좋아하는 친구들하고만 사귀었죠. 그래서 아마 친구들은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라기보다는 ‘말없는데 싸가지도 없는 친구’라고 기억할 거예요.
덕분에 독자들에게 호불호가 갈리는 편입니다. 이런 면 때문에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솔직히 저는 악플에 신경 안 쓰는 편이기 때문에 욕을 하셔도 상관없어요. 저를 다 아시고도 욕을 한다면 그건 고치겠다고 말하겠지만 보통은 저의 아주 작은 부분만 보고 욕을 하시는 거니까 그렇게 크게 귀담아 듣지 않아요. 그래서 댓글도 모니터링 안 해요. 어차피 반응은 두 가지거든요. ‘네가 좋다’ 혹은 ‘네가 싫다’
항상 당당한 도국 작가님만의 자신감의 원천이 궁금합니다.
저는 뭘 하든 자신감이 있어요. 못하는 거라도. 안되면 뭐, 그때 가서 풀죽으면 되니까(웃음).
▲ 웹툰 ‘하리랑 에그타르트’ ⓒ김도국
전작인 ‘하리랑 에그타르트’는 어떤 작품인가요?
솔직히 제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하리랑 에그타르트는 정말 잘 만든 작품이에요. 오히려 스펙트럼 분석기보다 더 잘 만들었다고 생각이 드는데, 이유는 첫 번째로 ‘캐릭터성’, 두 번째로 ‘남다른 유머코드’. 매니악적 측면에서는 꽤 괜찮았거든요. 정말 연구 많이 하고 만든 작품이에요. 사실 다른 포털 사이트에서 연락이 왔었는데 폭력성을 배제하자는 얘기가 나와서 거절했죠. 그 뒤에 지금 연재하는 네이버에 들어가서 ‘왜 하리랑 에그타르트를 할 때 나를 부르지 않았냐’고 여쭸더니 피디님께서 ‘나는 그 작품을 좋아했지만 작품만 봐서는 네가 얼마나 미친놈인지 몰라서 선뜻 하자고할 수가 없었다. 작품만 봤을 때 너는 정상인이 아니었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작품을 보면 유머감각이 남다르신데 실제는 어떤지?
평소에 사람들 웃기는 건 좋아하지만 잘 안 통하는 편이예요(웃음). 무지 생각을 많이 해야 이해할 수 있는 개그를 자주 하거든요. 만화로만 봐야 웃긴 개그? 제가 하는 개그가 콩트처럼 연기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제가 연기를 못해서 아쉽죠.
만화 외 평소 관심사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스토리 만들 때 참고 많이 한 것은 영화예요. 스펙트럼 분석기 자체에 영화적 느낌을 가미하려고 했기 때문에. 찰리 채플린 영화 거의 40편 정도를 다 봤는데, 미치는 줄 알았어요. 작품을 위해 보기 시작했지만 좋아하게 된 것도 있구요. 하지만 찾아서 보는 타입은 또 아니고. 사실 저는 취미가 딱히 없어요. 책도 중학교 때 읽은 게 전부고 지금은 게임도 안 해요. 상상이 취미라고 해야 하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시나리오 구상이라고 얘기하죠(웃음). 이제 직업이니 말하기 편해졌어요.
보통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어디서 얻으시는지 궁금한데요.
스토리는 정말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곤 해요. 이를테면 하리랑 에그타르트는 계란을 먹다가 노란색이 참 예뻐서 병아리를 그렸는데 주인공이 병아리가 됐고요. 스펙트럼 분석기는 한창 그때 안영미씨가 인기 있을 때였는데, 그분이 인터뷰 하면서 우시는 모습을 보고는 참 당연한 사실인데 모르고 있었던 걸 알게 됐었거든요. ‘개그우먼이 항상 즐거운 사람은 아니구나.’하는 생각, 이걸 그리면 되겠다 싶더라고요. 솔직히 평소에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잘 안 해요. 즐기면서 하는 타입이라. 그런데 요즘은 일이 되면서 즐기지 못할 때도 있어요.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특별한 습관이나 버릇이 있나요? 비결이 궁금해요.
막힐 때 하는 습관이 있는데, 막히면 자요. 자다가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꽤 많거든요. 어떤 벽에 부딪혔을 때 그 장애물을 넘는 방법이 보통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해결될 때가 많은데 꿈에서 아이디어를 얻죠.
▲‘하리랑 에그타르트’ vs ‘스펙트럼 분석기’ 그림체 ⓒ김도국
하리랑 에그타르트와 스펙트럼 분석기의 그림체가 확연히 다른데요, 스토리텔링의 방향에 따라 그림체도 결정하시는 건가요? 차기작은 어떤 그림체를 생각하고 계신가요?
당연히 스토리텔링 방향에 따라 그림을 바꿉니다. 차기작은 스펙트럼 분석기랑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느낌의 그림체일 것 같아요. 스펙트럼 분석기가 너무 무거운 분위기였으니 이제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로 바꿔보려구요. 이번엔 컬러로 작업해야하는데 엄청 귀찮을 것 같아요. 하기 싫어요(웃음).
차기작으로 하리랑 에그타르트를 다시 하실 생각은 없으신 거예요?
뭘 해도 그것보다는 더 잘할 자신이 있으니까요.
그럼 6월에 나온다는 차기작은 어떤 내용의 작품인가요?
차기작은 무용 관련 이야기를 다루려고 해요. 이 작품은 그냥 발레 하는 걸 보니 ‘예쁘네’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걸 얘기하면 되겠다.’ 싶어서 만들게 됐어요.
“웹툰을 시작한 이상 최고가 되어 사람들이 저를 오래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웹툰 작가 도국 ⓒ이유지
웹툰작가에 대한 주변의 시선과 반응이 궁금해요.
제가 만화가를 생각하게 된 게 중학교 때였는데, 만화가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안 좋았어요. 왠지 월 40만원 받고, 독방에 살 것 같고, 병에 걸려 콜록콜록할 것 같은 이미지? 다른 사람들도 만화가라고 하면 긍정적인 반응이 아니었고요. 그런데 고 3때쯤에 만화라기보다는 스토리를 만들고 싶은 충동이 생긴 거예요. 근데 제가 글재주는 없고 그림은 잘 그리니 만화를 하면 되겠다 싶었지만 그땐 웹툰이 이렇게 뜨고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요. 하지만 지금 웹툰 작가는 정말 굉장하죠. 파급력이 크다는 생각도 들고. 만화가이면서 공인이기도 하니까요. 저도 가끔 가다가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요. 정말 가끔이지만요(웃음).
그럼 지금은 웹툰으로 만화작가들의 사정이 많이 좋아졌겠네요?
경제적인 측면은 사실 그렇게 좋진 않아요. 사이트에 따라 다르지만 신인 작가의 월급이 100에서 150만 원 정도인데, 작가가 되는 시점이 보통 30살인 걸 생각하면 많은 건 아니죠. 네이버 톱작가가 아닌 이상 조금 힘들어요. 완결이 나면 당장 할 일도 없고요. 저도 신인 작품치고는 인기가 많았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거의 일이 안 들어오는 상황이니까요. 그림 외주 정도가 전부죠. 단행본 인세도 사실 기대는 안하고 있어요. 완결이 좋았어야했는데 말아먹어서(웃음). 출판사마다 다른데 이번에 제 단행본은 강풀 작가 작품과 노블레스 등을 간행한 웅진출판사의 재미주의 기획팀에서 나와요. 근데 이 출판사는 팔린 부수가 아니라 찍어낸 부수로 인세를 주거든요. 좋은 출판사예요, 계속 함께하고 싶어요(웃음).
웹툰이 인기가 많아지면서 새로운 매체로 급부상하고 있지만 아직 유료화되지 않은 시점인데요, 웹툰 유료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원래 당연히 받아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제까지 계속 무료였으니 받는데 익숙해진 거죠. 이 부분은 작가와 독자의 입장이 다른 것 같아요. 저도 독자 입장으로서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유료화는 진행될 추세 같아요, 사실 ‘왜 안 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작가로서 도국의 꿈과 포부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일단은 웹툰을 시작한 이상 할 수 있는 만큼 올라가고 싶어요. 더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제 작품을 기억해줬으면 좋겠고, 나아가서 최고가 될 수 있다면 더 좋겠고요. 그리고 요즘 영화에 관심이 생겼어요. 작품 연구하며 보다보니 재밌더라고요. 만화도 이렇게 시작했는데 영화감독이라고 못될 게 뭐있을까 싶어요. 영화감독이 돼도 매체가 바뀔 뿐이지 작품 스타일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찰리 채플린을 떠오르게 하는 우울증의 벙어리 코미디언 ‘간나비’와 능글맞은 플레이보이 헤어디자이너 ‘장희동’이 만들어가는 환상적인 이야기, 웹툰 ‘스펙트럼 분석기’는 거칠지만 섬세한 그림과 흑백에 색채를 가미한 감각적인 연출, 복선을 사용한 영화 같은 전개 속에 담긴 의미있는 메시지로 4개월간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데뷔작임에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웹툰이기에 연재가 종료된 지금도 독자들 사이에서는 난해한 결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도국에게 직접 듣는 ‘스펙트럼 분석기’, 이 정도면 감상이 아니라 분석일걸요?
전격 해부! 도국이 말하는 '스펙트럼 분석기'
‘스펙트럼은 완전한 자아, 그리고 그로 인해 얻는 행복이라고 볼 수 있어요.’
▲웹툰 ‘스펙트럼 분석기’ ⓒ김도국
▲스펙트럼 분석기 초기 컨셉과 실제 콘티 ⓒ김도국
웹툰 ‘스펙트럼 분석기’의 스토리 구상과 자료수집기간이 궁금해요.
스펙트럼 분석기는 연재 직전에 만든 스토리는 아니고요, 작가가 되기 위해 준비했던 스무 편정도 되는 스토리 중에서 택한 거예요. 그래서 준비기간은 두 달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저는 시나리오 쓸 때 연출이나 그림 그리는 방식까지 메모하는 편이거든요. ‘이렇게 그려야한다, 페이드아웃을 넣는다’ 같은 식으로요.
▲캐릭터 초기설정과 의상디자인 ⓒ김도국
캐릭터 설정은 어떻게 하셨나요?
그리기 전까지 캐릭터 설정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여자 주인공을 예쁘게 그려야하나, 남자 주인공을 잘생기게 그려야하나?’ 사실 처음에는 남자가 잘생기고 여자가 예쁘지 않았어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세요(웃음). 남자가 잘생기면 여자는 보는데 남자는 보지 않아요, 그런데 여자가 예쁘면 남자도 보고 여자도 본단 말이죠. 그래서 전략적으로 선택해서 캐릭터를 설정하게 된 거예요.
간나비, 장희동이라는 주인공들의 이름을 따온 곳도 궁금해요.
간나비 같은 경우는 실제랑 상반되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나비는 자유로운 곤충이지만 실제 주인공은 그렇지 못하잖아요. 장희동 같은 경우는 숨은 에고를 표현하고 싶었고요. 희동하면 둘리에 나오는 아기인 희동이가 떠오르는데, 장희동은 멋있는 척하는 남성이잖아요. 남성적인 캐릭터지만 속은 그렇지 않은 거죠. 정반대의 귀여운 이름이면 캐릭터가 더 전달이 잘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성은 이름에 맞춰서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을 붙였고요.
작품 제목이자 극 중 퍼플래빗의 노래인 스펙트럼 분석기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대부분이 얘기하시는 것처럼 스펙트럼이 간나비고 장희동이 분석기여서 간나비를 장희동이 분석하고 둘이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보셔도 되긴 하는데, 사실 스펙트럼 분석기는 모든 이에게 다 적용되는 거예요. 스펙트럼은 완전한 자아, 그리고 그로 인해 얻는 행복이라고 볼 수 있어요. 스펙트럼은 평소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석기를 통해서는 보이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는 노력을 통해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가야한다는 거죠. 사실 분석기 말고 좀 더 쉬운 단어를 쓰고 싶었는데 못 찾겠더라고요(웃음).
간나비의 언어장애를 표현하기 위해서 특별히 따로 공부하신 게 있는지?
사실 수화도 공부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수화까지 들어가면 준비기간이 길어질 것 같았고, 짧은 만남이라는 느낌이 사라질 것 같았어요. 게다가 등장인물을 추가해야하는 경우가 생길 것 같았고.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보여주는 설정을 생각해낸거죠.
▲스펙트럼 분석기 5화 中 ⓒ김도국
5화의 엘리베이터 신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후로도 자주 등장해요. 어떤 의미가 있나요?
당연히 언어장애로 인한 고난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엘리베이터신이 가장 적절했던 거죠. 작품 속 엘리베이터는 굉장히 많은 의미를 가진 장소예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장소이기도 하고, 나비가 홀로 힘듦을 겪는 장소이기도 하고, 다시 만나는 게 되는 장소이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특별한 분위기를 갖는 공간이기도 하구요. 둘만 남겨진 듯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주죠.
복선과 상징, 대비들이 문학적인 느낌까지도 주는데 스토리텔링에 대한 공부를 하셨나요?
저는 기법서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에요. 그런 책을 본다고해서 저만의 감수성이 바로 생긴다고도 생각하지 않고요. 그래서 따로 공부한 건 없고, 대신 전 영화를 볼 때 직접 스토리를 다 요약해보거나 대사를 적어두곤 하죠. 드라마 대본 같은 경우도 다운받아서 많이 봤어요.
의외로 노력을 많이 하셨네요.
천재 같은 타입이긴 한데, 노력 많이 했죠(웃음). 인터넷 보면 ‘도국님 천재예요~’하시는데 저는 노력 굉장히 많이 했어요.
작품이 굉장히 감각적입니다. 캠코더 촬영기법과 조도로 심리를 표현한 점이 인상적인데, 흡사 영화를 보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만화를 잘 보지 않기 때문에 연출을 공부하기에는 영화가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영화는 마치 실제로 본 듯한 느낌이 든다는 점도 좋았고요. 만화와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적인 연출을 하게 됐죠. 그리고 이 부분은 제가 많은 공부를 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자주 쓰게 될 것 같아요.
▲스펙트럼 분석기 15화 中 ⓒ김도국
전체적으로 코미디언이었고 흑백, 무성영화 감독이자 배우였던 찰리 채플린의 오마주 같은 느낌을 주는데요, 어떤 의도를 담고 이렇게 연출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코미디언을 소재로 삼고 나서 개그의 근원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는데, 그러다보니 조금 더 이전의 개그들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된 거죠. 최근엔 말로 개그를 많이 하는데 몸짓만으로 웃기는 초기의 개그를 보고 ‘이거다!’ 싶었어요. 그래서 제 작품도 어쩌면 대사보다는 그림 자체에 의미가 있죠. 찰리 채플린은 일단 콧수염 하나만으로 상징이 된다는 점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게다가 제일 유명한 개그맨을 관찰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러다보니 빠져들게 됐고요. 사실 시나리오 짜기 전에는 찰리 채플린과 연결시킨 것이 아니었어요. 간나비는 자기만의 개그가 있는 사람이었고 심지어 벙어리도 아니었죠. 찰리 채플린을 접하게 되면서 모든 것을 바꿨는데, 그 정도로 마력이 있었어요. 작품 속 중요한 날짜인 12월 25일 크리스마스는 찰리채플린의 기일이기도 해요.
15화는 채플린의 영화 속 장면들을 이용하여 극중 스토리를 풀어내셨는데, 여러 사건들의 영감을 처음부터 채플린 영화에서 얻으신 건지요?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가져와서 오마주로 간나비의 일생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저 영화에 있는 장면들을 상황에 맞게 가져와서 그린 거예요. 스토리를 짤 당시에는 영화 상황들을 그다지 많이 가져오진 않았는데 그게 약간 후회가 돼요. 영화 전편을 열심히 다 봤는데 쓰지 못했다는 게(웃음).
작품 전체적으로 흑백을 사용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실 제가 색칠하기 귀찮아서였어요(웃음). 먼저 무성영화와 연관시켰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흑백이 되었고요. 거기에 색채를 더한 것은 메시지를 더 확실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예요. 흑백이 스펙트럼을 가장 돋보이게 할 수 있어서였기도 했죠.
▲스펙트럼 분석기 9화 中 ⓒ김도국
스펙트럼 분석기를 풀어낼 수 있는 가장 큰 열쇠는 '색채상징'인 것 같아요. 빨강과 보라가 뜻하는 의미가 궁금합니다.
극과 극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스펙트럼의 끝과 끝이잖아요, 빨간색과 보라색. 그 두 가지가 ‘처음에는 대립했다가 만나면서 결국 완전한 스펙트럼을 이룬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시면 돼요. 둘 중 어떤 것이 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지는 않아요.
무지개색 연기를 가진 담배 ‘환타지아’는 어떤 장치인가요?
덕분에 모든 것이 환상 같다는 분들도 있는데 제 의도는 아니에요. 담배는 간나비의 캐릭터일 뿐이에요. 환상 같은 여자를 표현하기 위한 거였죠. 솔직히 말하면 제가 그리는 모든 부분에 의미를 두진 않아요. 오히려 저는 감각적인 느낌을 주는 데 더 비중을 두는 편이구요.
사비나 앤 드론즈의 음악은 어떤 계기로 본편에 삽입하게 되었나요? 곡을 듣고 간나비가 생각나신 건지 설정에 맞는 음악을 찾아보신 건지 궁금해요.
시나리오를 짜던 중에 듣긴 했는데 굳이 연관시키진 않았어요. 그리다보니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쓰게 된 거죠. 사비나 앤 드론즈는 ‘나를 보고 그린 거구나’하고 말씀하시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요(웃음). 'Stay' 노래가 너무 좋아서 제가 따로 연락드렸는데 흔쾌히 승낙해 주시더라고요. 네이버 캐스트 온스테이지의 모든 음악을 다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듣다가 기억에 남아서 연락드리게 된 거예요.
스펙트럼 분석기의 결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요, 접근할 수 있는 팁을 준다면?
딱히 너희가 이해하라고 만든 게 아니에요, 장난이구요(웃음). 더 이해하기 쉽게 그리려면 그럴 수도 있었어요. 15화에서는 대사가 없이 간나비가 처음부터 끝까지 무성개그만 하는 데 그 상황에 대해서 제가 일체 설명을 드리지 않아요. 그리고 16화에서도 장희동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고요. 단지 제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그 때 느꼈던 두 사람의 감정이 무엇인가예요. 하나 실패한 게 있다면 16화에서 ‘장희동이 왜 그 행동을 하고 있었느냐’ 이건 구체적이 아니라도 언급은 미리 드려야겠다고 생각해왔는데, 중간에 굳이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잘라낸 거예요. 왜 희동이 봉에 찔리는지, 어디를 헤매고 있는지 이런 얘기를 늘어놓다보면 이야기가 길어져 산으로 갈 것 같았고 그 장면에서는 희동의 느낌, 감정만 전달되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스펙트럼 분석기 16화 中 ⓒ김도국
그럼 16화 장면들은 실제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 건가요,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건가요?
실제 행위를 하고 있는 거예요. 부탄이라는 불교국가에서 제령의식을 하는 상황인데 그걸 구차하게 설명하기 시작하면 ‘왜 갑자기 이 이야기를 하지? 이건 무슨 만화지?’하는 생각을 하실 것 같고 제 취지에 안 맞을 것 같았어요. 장희동이 헤매다가 큰 시련을 만났고 간나비를 생각하게 된다. 이게 중요한 점이었어요. 여러분이 굳이 해석해서 이해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고, 희동이 느끼는 감정만 전달되면 됐다고 생각해요. ‘장희동 너무 짠하다’ 이런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이 각자의 해석에 맡겨야겠죠.
간나비와 장희동의 결핍 요소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작품의 난해함을 풀어내는 열쇠가 될 것 같습니다. 나비는 비교적 뚜렷한 편이지만 희동은 어떻게 된 것인가요?
일단 희동은 간나비같이 꿈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요, 방탕한 사람이었죠. 그러다 간나비를 만나며 자신의 삶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하긴 했지만 나비를 여자로서 좋아하는 부분이 커서 그런 고민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어요. 그러다 나비가 떠나고 유령을 볼 수 있는 자신의 문제점을 느끼게 되면서 진짜 자신을 알기 위해 떠나는 거죠. 그 뒤 제령의 과정을 제가 보여드리지 않은 거예요.
작품에서 석가탄신일과 크리스마스, 극락왕생과 같은 종교와 관련된 요소들이 많이 보이는데요, 그 의미가 궁금합니다.
석가탄신일 자체는 의미를 뒀었는데요, 크리스마스는 제일 기억에 많이 남아서 사용한 거예요. 불교는 제령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종교라 우연히 맞아떨어져서 사용하게 된 거지 크게 종교적인 의미는 없어요. 극락왕생 같은 단어는 희동이 살아있다는 암시를 주고 싶었던 거구요. 여러분, 장희동 귀신 아니에요(웃음).
‘완벽한 인연을 만들고 싶었어요.’
▲웹툰 작가 도국 ⓒ이유지
작품 내 제 3 서술자가 보여준 반전이 충격적이었어요. 서술자의 정체와 이런 기법을 사용하신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스펙트럼 분석기에 희동과 나비 외에는 등장인물이 없잖아요. 일부러 두 사람을 고립시켜두고 세계 자체를 분리시키고 싶었어요. 제가 만들고 싶었던 게 완벽한 인연이었거든요. 두 사람이 단순히 좋아하게 되는 상황으로는 부족했고요, 반드시 두 사람을 완벽하게 묶을 수 있는 특별한 계기가 필요했죠. 그러다보니 초자연적 현상을 떠올리게 됐고 유령을 생각하게 된 거예요. 제 3 서술자 입장을 표현하기에도 유령이 좋았던 것 같고요.
후반부에 급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며 설명이 부족해지는 느낌이 드는데 그 때문인지 독자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는데요, 스펙트럼 분석기가 열린 결말이라는 의견도 있더라구요.
저는 스펙트럼 분석기를 열린 결말로 만든 것이 아닌데요, 독자 분들이 그런 해석들을 붙이시더라고요. 사실 저는 이번 작품을 상황에 맞게 보다는 등장인물의 감정에 맞게 시간을 배열했거든요. 간나비가 느끼는 감정에 맞춰서 진행하다보니 급하게 느껴지는 감이 있죠. 제가 많이 함축시키기도 했고요. 의도된 겁니다.
지나치게 예술성을 추구하다 균일한 난이도로 제대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한 것이니 역량 부족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는데요, 이런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분명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은 제 역량 부족이에요. 쉽게 풀어서 설명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그렇게 독자의 시선에 억지로 맞춘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포기할 수 없었어요. 사실 저는 예술성이라는 단어 자체를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면 작품이 더 안 좋아질 것 같아서 선택한 것뿐이죠. 이전의 하리랑 에그타르트 같은 경우에는 대중성에 맞춰서 만든 거였어요. 대중이라고해도 매니아층이였긴 한데, 사람들이 보지 않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는 생각도 해요. 나중에는 대중을 고려한 작품을 쓰게 될 지도 모르겠어요. 그렇다해도 최대한 제 만화를 많이 볼 수 있게끔 만드는 일종의 장치죠.
팬들이 후기를 기다리는데 왜 안 쓰셨나요?
굳이 작품해설을 하고 싶진 않았어요. 저는 해석은 독자 몫이라고 생각해요. 독자들이 자유롭게 상상하게 놔두고 싶어요. 제가 ‘여기서 벗어나지마’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요. 제가 만들었지만 제 의도랑 다르게 해석해도 그게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스펙트럼 분석기 에필로그 中 ⓒ김도국
결국 '스펙트럼 분석기'를 통해 전달하고자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전하고 싶었던 것들을 표현한 것이 에필로그인데요. 작품의 전체적 주제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에 함축되어 있지만, 제가 이 만화를 통해서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간나비의 말에 담겨있어요. ‘무언갈 찾기 위해 절망 속에서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스펙트럼처럼 아름다운 빛을 주고 싶었어요.‘ 이 세상의 수많은 간나비와 장희동을 응원하고 싶었습니다.
▲웹툰 작가 도국과 도란도란 문화놀이터 독자들을 위한 그림 ⓒ이유지
스펙트럼 분석기가 본인의 의도를 얼마나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시는지 점수를 준다면?
10점 만점에 5점이요. 이번 완결도 솔직히 저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다음에 만들 작품이 기대가 돼서요. 다음 작품은 한 7점정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 점점 10점에 가까워지겠네요?
10점 만점에 12점까지도 가고 그러겠죠?(웃음)
‘스펙트럼 분석기’는 결국 단순한 연애담이 아니라, 각자 결핍을 가지고 있지만 완벽한 인연으로 묶여있는 극과 극의 두 사람이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면서 운명적 장애를 이겨내고 있는 그대로의 완전한 자아인 스펙트럼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일종의 성장담이라고 볼 수 있다. 간나비와 장희동이 겪는 일련의 사건들은 세상에 던져져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 삶의 모습과 일치된다. 비극을 희극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 그들이 찾는 행복에 대한 작가의 소묘 ‘스펙트럼 분석기’. 도국의 문제적 언행들이 밉지만은 않게 다가오는 것은 과장된 언사 뒤에 숨어있는 작품에 대한 열정과 노력 때문일 것이다. 아직 그는 최고의 작가라기엔 부족할지라도 어쩌면 가장 매력적인 작가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그의 또 다른 색들이 모여 만들어 낼 찬란한 스펙트럼을 기대해본다.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사람들(Working people), 자연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이 극에 달한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일상(Well-being people), 그리고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The Captured nature).
▲ 상품처럼 쇼핑백에 담겨져 가는 자연, The Captured nature_Tree (2012) Ⓒ박형렬
2010년부터 지금까지 "Captured nature(포획된 자연)“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는 사진작가 박형렬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전달하고 있다. 그 이전엔 사회와 인간의 관계를 주제로 작업한 "Working people"을 통해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사회 안에서 ‘소비’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후 "Well-being People"에서는 웰빙이라는 구호아래 맹목적으로 자연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시각을 풍자적으로 드러냈다. 작품의 주제가 다른 듯 보이지만 결국은 이 작업 모두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바로 ‘인간’이다. 다양한 주제를 통해 그가 진짜 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네 번째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Invading Nature"의 전시장을 찾아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Invading nature” 전시장 풍경 Ⓒ박형렬
[박형렬 작가 프로필]
1980, 서울 출생
학력) 2012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전문사(석사) 졸업
2009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졸업
수상)
2012 송은아트큐브 전시지원 선정- 송은문화재단
2012 28th International Online Artist Competition First Prize-Art Interview Online Magazine, 독일
성공하고 싶은 욕망, 갖고 싶은 욕망, 빼앗고 싶은 욕망 등 수많은 욕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살고 있다. 더욱이 이런 욕망을 부추기는 이곳에선 아주 조금의 틈만 보이면 이리저리 휘젓고 들어와 회색으로 물들인다. 자연은 그 회색 빛깔에 따라 옮겨지기도 하고 끌려가기도 하고 무엇으로 탈바꿈되기도 하면서 아주 피곤한 자신의 삶을 살 뿐이다. 생각해 보건대, 우린 단 한 번도 자연에게 당신 생각을 물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되는지를._ 2011년 「The captured nature」작가노트 中
Q. Captured nature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자연을 주제로 한 작업은 well-being people(2009)에서부터 시작되었어요. 웰빙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을 보면서, 자연이 인간에게 유린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회 속에서 관찰한 자연의 모습은 인간의 이용목적에 의해 이리저리 옮겨지거나 답답한 대리석 안에 갇히게 되는 등 아주 피곤하고 불편한 일생을 사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인간과 자연을 사냥꾼과 사냥감으로 설정하고, 인간들이 다양한 덫(장치)들을 이용해 자연을 사냥(포획)하는 모습을 연출했죠. 이러한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한 ‘The captured nature’는 과연 자연이 인간의 마음대로 소유와 이용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한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Q. 사진에서 중점을 두고 표현 하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것이었나요?
A. 처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도시에서 자연의 존재가 부자연스러운 공간에 놓여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사람들을 위해서 조성되는 공원은 우리 눈엔 ‘예쁘게’ 보이도록 포장 되어있어 좋아 보이지만, 사실 자연이 편안하도록 배려하면서 조성된 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걸 보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어요. 약간 시니컬하고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일방적으로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는 아니었고,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를 던져주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진을 통해 그 계기를 너무 불편하거나 무겁지 않게, 재치 있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 자연을 포획하는 사람들(작업 초기의 사진) Ⓒ박형렬
#. Project_ The Captured nature
Q. 초기에는 끈이나 비닐 등 일상 소재를 이용하여 ‘포획’이라는 1차적 의미에 충실한 작업을 해왔는데요. 비교적 의미가 명료했던 반면에 최근 작업에서는 ‘개념’ 위주로 표현이 된 것 같아요.
A. 작업 초반에는 직접적인 포획의 방식을 이용했죠. 그 후엔 더 인간적인 방법에 포획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인간의 가장 인간적인 방식은 ‘의식’을 사용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성적인 판단 행위를 통해 포획을 계획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 “흑과 백은 이분법적인 의미로써 선과 악이 아니라, ‘대립’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에요.” Ⓒ박형렬
Q. 인간적인 포획을 사진에서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A. 흑과 백은 대립적 이미지를 갖고 있어요. 이 대립은 인간의 가치관들이 부딪치는 것을 의미해요. 중요한 건 누군가 이겨서 이긴 쪽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연이 움직이게 된다는 결과보다, 대립되는 와중에도 땅이 계속 파헤쳐지고 자연이 망가지고 있다는 거죠.
누가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는 없고 어느 쪽이든 결국은 자연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하려 한다는 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Q. 진행되었던 프로젝트 중 인상 깊었거나 가장 애착을 가진 작업은 무엇인가요?
A. 'earth'라는 연작으로 만든 작업인데요. 땅을 규격화해서 포획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땅의 면적을 1평, 1/2평, 1/4평… 이런 식으로 나름의 규칙성을 갖고 평을 나누어 가면서 땅이 표면에서 뜯겨나간 모습을 표현했어요. 연작에서는 뜯겨나간 표면이 어딘가에 정착해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국은 인간이 자연을 진짜 소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 것이죠. 땅의 일정부분을 소유해도 그 아래에는 여전히 땅의 수많은 표면(가치)들이 남아있어요. 결국, 아무리 가져가도 다 가질 수 없는데 계속 가지려고 하는 것에 대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자는 거였죠.
▲ The Captured nature_ earth & Snow Ⓒ박형렬
▲ 각 숫자의 면적들은 모양이 다를 뿐, 1평으로 모두 동일하다. 숫자 6위의 서있는 여자는 9위에 서있는 여자를 바라본다. 6과 9는 뒤집으면 서로 같아지는데도 둘은 서로를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숫자’에 대한 인간의 의식적인 속물기질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박형렬
Q. 사진들을 보면 앞뒤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상상하게끔 하는데 의도적으로 구성하는 것인가요?
A. 저는 조형성과 내러티브(이야기)를 갖는 사진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사진도 시각적인 예술이니까요. 조형적인 구성에 인물이나 다른 장치가 들어간다면 더 효과적인 표현을 할 수 있지 않을까를 고민했어요. 사람들이 사진을 볼 때 색감이 화려하거나 아이디어가 드러나면 이미지에만 신경 썼다, 가볍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사진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니까, 과정이나 개념이 중심인 사진이라도 이미지를 완성도 있게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고속도로나 지방 도시를 달리다보면 크레인이 산을 헤집고 있는 것을 종종 봅니다. 그 모습이 마치 케이크를 위에서 떠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대부분 직접 보고 느끼는 것에서 개념을 가져오고 작업으로 표현하는데, 원은 자연(순환)을 상징하고 이것이 인간에 의해 분리되고 재단되어 지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박형렬
그는 사진에 의도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과장스럽게 표현하지만 그 과장은 철저한 계산으로 이루어진다. ‘평’에 대한 작업을 할 때에는 일일이 자로 계산을 하며 선을 그었다. 연출을 준비하기 위해 새벽부터 사진 찍을 장소로 출발하여 빈틈없이 하루를 채우고 돌아오는 것은 기본이고, 포괄적인 형태를 보여주기 위해서 20m 높이의 고공 크레인에 올라타 사진을 찍기도 한다. 완성도 있는 그의 사진 뒤에는 이러한 작가의 노력뿐만 아니라, 그를 곁에서 도와주는 손길들의 수고도 빠질 수 없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에만 한시적으로 모이는 이들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도와주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자연(自然)스러워’지고 싶은 작가, 박형렬
드라마 속 비극의 주인공처럼 모든 불행이 마치 내 것인 것처럼 행동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난 하루가 멀다고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마음 닿는 곳에 발을 디뎠다. 마치 두서없는 글처럼.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에 난 내 발이 숲 속을 지나 산 정상을 내딛고 있었음을 보게 되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산책이다. 자연에 내보이는 관심과 강박적인 집착은 어쩌면 위안을 받고 있다고 느낀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_2011년 「The captured nature」작가노트 中
Q. 작가노트를 보면 자연에 대한 애정이 많이 느껴집니다. 실제로 삶 속에서 자연에 대한 애정을 특별히 표현하는 방법이 있나요?
A. 저는환경보호 운동가가 아니에요. 환경을 살리기 위해 무언가를 특별하게 하지는 않지만, 매일 밤 산책을 합니다. 걷기나 등산을 좋아해요. 인위적으로 무언가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끼려고 하죠. ‘이 산을 정복해야해’ 이런 것이 아니라 그냥 편안하게 걷고 느끼고 오르고 내려오는 것이 전부입니다. 아, 그러고보니 저는 집에 있는 화분을 전부 자연으로 가져다 심기도 했네요. 화분은 사람들이 편하기 위해서 자연을 집으로 데려온 대표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전시장에도 화분 선물은 받지 않아요.
▲ 실제 촬영은 1시간정도 걸리지만, 촬영을 준비하기 까지 길게는 며칠씩 준비를 해야 한다. Ⓒ박형렬
Q. 자연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것에 부담은 없으신가요? 질문을 던지면, 나도 그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잖아요.
A. 부담은 아니고 책임감은 느끼죠. 자연에 대한 훼손은 하지 말아야겠다.(웃음) 이번 전시는 “Invading nature" 즉, 자연을 물리적으로 훼손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지적인 폭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테마에요.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자연을 망가뜨린다거나 그런 것은 없었고요. 그래서 부담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작업들도 모두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연출을 하는 거지 자연에 위해를 가하지는 않았습니다. 촬영이 끝나면 모두 원래의 모습대로 꼭 복구합니다.
▲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크기와 색으로 자연을 바라본다, Ⓒ박형렬
▲ Workig People(위) well-being people(아래) Ⓒ박형렬
Q. The Captured nature이전에도 working People, well-being people이라는 주제로 주체성 없는 대중이나, 사회 현상에 대한 풍자적인 작업을 해오셨는데요. 사진을 통해 사회문제에 대한 이슈를 다루는 것이 큰 파급효과를 기대하긴 어렵지 않나요. 무엇을 목적으로 작업을 하시나요?
A. 돌멩이를 던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돌멩이들이 어떤 큰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 기대하면서 하는 것은 아니에요. 유명한 스타들은 말 한마디로 큰 파장을 가져올 수 있지만 이런(사진과 같은) 예술이 큰 이야기를 꺼낸다고 해서 대중이 크게 반응을 하지는 않죠. 다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불편한 무언가를 계속 던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나 음악과 같은 대중예술은 파급력이나 선동력이 크지만, 스스로 어떤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사진이나 회화같은 시각 예술이 더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아요. 결과물을 계속 보여주면서 지속적인 담론을 만들 수 있으니까, 보는 이들도 언젠가는 질문을 하게 되겠죠. 개인적으로 홍상수 영화감독을 좋아하는데요, 저도 그렇게 단지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줌으로써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하고 싶어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무언가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일회적인 유행에 몸을 싣고 무언가 결정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려는 노력 단지 그것을 바랐다. 그는 사진 속에 의도된 메시지를 넣고 있지만 ‘답’을 만들어 의미를 고정하지는 않는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담담히 세태를 묘사하고 ‘보여주는’ 것에서 걸음을 멈춘다. 어떤 것은 옳고 어떤 것은 옳지 않은 이분법적인 판단에서 벗어나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삶의 풍경을 선택지로 제시하려는 작가의 노력이다. 순간을 기록한 사진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는 그의 이미지 재현 방식과 더불어 작가의 고민이 담긴 철학을 배경으로 탄생한 The captured nature의 이야기는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연관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할 것인지,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인지.
A. 당분간은 계속 할 생각이에요. 이미지로 보여줄 수 있는 건 보여주고 설치 예술이나 이야기를 담은 퍼포먼스 적인 영상도 제작할 예정입니다. 좀 폭넓게 가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미지만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설치나 영상이 있으면 관객들과 좀 더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작품 속 메시지가 계속 같은 이야기를 전달하다가 좀 더 긍정적으로 바뀔 수도 있고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 현재 시작한 이야기는 더 해나가되 표현 방식은 다양하게 해보려고 생각 중입니다. 여기 저기 관심을 가지면서 이거했다 저거했다 하면 진정성도 떨어지고 허무해지잖아요. 사람들 보기에도 이게 다 뭐지?하는 생각이 들겠죠. 한 가지 큰 주제 안에서 연관된 다양한 이야기를 파생하면, 이미지는 비슷하지 않으면서도 결국에는 한 가지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어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이야기 속에서 파장이 되어 나아가기를 원해요.
“전시장에서 어떤 분이 사진이 걸린 나무 액자를 보고 ‘이 나무 프레임도 부자연스러운 곳에 있는 것이 아니냐’고 했던 적이 있어요. 제가 원하는 건 바로 그런 질문이에요. 스스로에게 이건 왜 여기에 있게 되었을까, 던지는 그런 질문 자체요.”
Q. 마지막으로 프로젝트 작업에 대해 사람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사람들은 자연에 관심을 갖자고 하면 물리적인 훼손이나 파괴처럼 지구의 전체적인 오염에 대해서만 생각합니다. 전체의 커다란 문제를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우선 내 주변과 내 집에 있는 자연에 대해 먼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옆에 내 창가에 있는 선인장 같은, 나와 함께 관계 맺고 있는 작은 자연에서 부터요.
2012년 작년 한 해 동안 수상도 많았고, 경기도 창작센터에 입주 작가로도 선정 된 그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운이 좋게 기회가 왔을 뿐’이라고 대답하던 박형렬 작가. 어쩌면 모든 것은 정말 그렇게 눈이 녹고 꽃이 피듯이 자연스럽게, 그에게 찾아왔을 것 같다. “그래도(해야지)”의 가치를 믿는 작가의 사진에는 그를 닮은 희망의 단서들이 무수히 잠복 중이다. 박형렬 작가의 말대로 훗날에는 좀 더 유연한 시선으로 다른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다음엔 또 어떤 이야기를 찾아내든 그것은 나름대로 그 다운 이야기일 것이라는 기대가 생긴다. 오늘도 자연은 제 존재를 아끼지 아니하고 늘 그러하였듯이 자신의 일들을 해 나가고 있다. 작가 역시 그러한 일상에서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정경들을 찾아내어 애정을 담아 묵묵히, 기록해 나가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