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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7일은 굉장히 특별한 날입니다. 25번째를 맞은 제 생일이기도 하지만 지난 1년을 함께한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 6기 활동이 끝나는 날이기 때문이죠. 작년 이 맘 때 저는 2년간 한량같이(?) 살았던 부산에서의 휴학생활을 정리하고 복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우연히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고 1차, 2차 심사를 거쳐 문화체육관광부에 당당히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저는 1년간의 기자단 생활을 마무리하는 롤링페이퍼를 쓰고 있네요. 활동을 하면서 제 지인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 활동에 대해 궁금해 하였는데요. 마지막 롤링페이퍼는 제가 1년 동안 직접 온몸으로 보고, 듣고, 느낀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에 대해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은 정부부처 최초로 만들어진 대학생기자단 프로그램이랍니다. 대학생기자단이 되면 문화체육관광부 공식 블로그에 올릴 기사를 작성해야 합니다. 공식 블로그인 ‘도란도란 문화놀이터’는 하루 평균 2, 3천명이 방문하는 파워 블로그죠. 그렇기 때문에 대학생기자들은 양질의 스테이크가 아닌 콘텐츠를 제작하고자 매달 2번씩 기획회의를 합니다. 기획회의 후 선정된 아이템에 따라 기자들은 애증의 순간인 ‘섭외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물론 굉장히 쉽게 섭외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유명 인사들의 경우 섭외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죠. 혹여 섭외가 되더라도 인터뷰 날짜가 정해질 때까진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직접 그 사람과 마주하기 전까지 섭외는 섭외가 아니랍니다. 하지만 고된 섭외의 순간이 지나 인터뷰이와 마주했을 때의 그 짜릿함이란! 물론 이처럼 인터뷰를 하는 경우도 많지만 문화, 체육, 관광 분야와 관련된 행사에 취재 가는 경우도 많답니다.


▲저의 첫 인터뷰이였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남궁연씨 섭외 과정 대공개! 초보 기자 냄새가 폴폴 나네요. ⓒ박미래




려한 인터뷰이들과의 만남


위에 언급했듯이 대학생기자단 활동을 하면 다양한 인터뷰이를 만나게 됩니다. 문화, 체육, 관광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인터뷰이 후보라고 볼 수 있죠. 문화체육관광부 공식 블로그 내 ‘도란도란 인터뷰’와 ‘궁금한 [일자리]’ 메뉴의 기사 작성을 위해 대학생기자들은 주로 인터뷰를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만난 인터뷰이들을 보니 그 때의 기록이 새록새록 나네요. ⓒ박미래


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남궁연, 사진작가 오중석, ‘먼나라 이웃나라’ 이원복 교수와 같이 이름만 들어도 ‘우와’하게 되는 분들을 많이 뵈었는데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생기자들도 굉장히 유명하신 분들(예를 들면, 윙크보이 이용대 선수, 무한도전의 김지호 조정코치, 야구여신 최희 아니운서 등)을 인터뷰하였죠.



면 팍팍 살려주는 문화체육관광부 초대행사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을 하면 누릴 수 있는 크나큰 혜택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데요. 활동을 하다보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초대하는 행사가 많이 있어 주변 친구들을 초대할 기회가 많답니다.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 문화체육관광부 도서 나눔 이벤트 <사랑으로 채우는 도서관>의 네 번째 행사가 있었는데요. 친구들에게 2011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의 오프닝 공연을 맡아 화제가 됐던 연극 <템페스트>를 보여주며 이들이 작은 도서관에 책을 기부하는 캠페인에 참여토록 했죠. 행사가 끝난 뒤 친구들은 저 덕분에 굉장히 좋은 경험을 했다며 말해주는데 어찌나 뿌듯했는지 모릅니다.


▲행사 직후 친구들과 찰칵!




(6)기의 환상적인 호흡


어떠한 활동을 하던지 간에 사람관계가 제일 중요하죠.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다 할지라도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과 잘 맞지 않는다면 그 시간은 지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으로서의 제 시간은 언제나 즐거웠습니다.


▲처음 워크숍 사진 수업 때 어색하게 서로를 찍어야만 했던 순간 ⓒ남경동


작년 이 맘 때 처음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던 워크숍 당시만 해도 어색한 분위기에 몸서리칠 수밖에 없었지만 적어도 2주에 한 번 보게 되면서 금방 친해지게 됐답니다. 바다와 함께 한 ‘도란도란 문화놀이터’ 2주년 이벤트, 북촌 한옥마을에서 진행된 하계 워크숍, 그야말로 핫(hot)한 부스였던 유니브 엑스포 등 다양한 행사를 함께 하면서 6기 기자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항상 6기 남기자들과 성훈쌤의 술자리를 주도한 병화오빠, 유니브 엑스포 때 깨알같은 멘트로 웃음을 선사했던 창희오빠. 처음엔 뉴저지였지만 썰렁한 말장난으로 원성을 곧잘 샀던 병휘, 병휘의 지산 ‘빡’ 사건을 누구보다 맛깔나게 했던 분위기 메이커 경동이. 카페베네에서의 애정행각으로 1년 내내 놀림 받는 몽키 원철이, 보이는 모습과 달리 순진 아니 순수한 김해남자 성문이. 6기 얼굴마담으로 ‘문화부 사람들’ 공식 리포터 이웃사촌 미영이, 한체대 다니는 씩씩한 그녀지만 눈물 많은 울보 혜린이, 북촌과 하나 되었던 단아하지만 당찬 우리 막내 자은이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곱씹고 나니 그들과 함께해서 즐거웠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앞으로도 6기의 인연은 계속됩니다.




심만 있고 평소 접하지 못한 분야가 있다면?



생각해보니 저 같은 경우 어쩌다 보니 직업인터뷰를 굉장히 많이 했는데요. 세어보니 2011년 3월 이후 작성된 15개의 직업 인터뷰 중 6개는 제가 작성했네요. 직업 인터뷰의 경우 해당 직업에 종사하고 계신 분과 인터뷰를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생생한 직업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평소 잘 몰랐던 부분도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면서 좀 더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어린이들을 위한 여름축제 ‘아시테지 여름축제’, 물 위를 달리는 마라톤 대회 ‘황강 수중 마라톤대회’ 등 평소 가기 힘든 행사들도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 활동을 하면 가기가 수월해지죠. 국악에 대해 전혀 무지했던 저였지만 ‘천차만별 콘서트’, '화통 콘서트‘ 등을 다녀오면서 낯설게만 느껴졌던 국악에 한 걸음 다가선 기분도 느낄 수 있었답니다.



속으로 지난 1년


정말 말 그대로 광속으로 지난 1년이 흘러간 것 같아요. 앞에서 설명한 대로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 활동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던 2011년이었습니다. 처음에 기자 흉내를 아무리 내려 해도 어설펐는데 어느새 “안녕하세요?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 박미래입니다.”라는 인사말이 어색하지 않게 됐네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우수기자 2명에게 주는 표창장. 하나는 제가! ⓒ김민영


저는 총 54개의 기사를 작성했는데요. 롤링 페이퍼를 쓰며 하나씩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새벽마다 뜬 눈으로 기사 작성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죠. 한동안은 화요일 밤 12시가 다가오면 아이템을 내야 될 것 같아 괜스레 마음 졸일 테고, 금요일이 되면 대학로에 가야될 것 같은 조바심이 들 것 같아요.




러운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 7기


드디어 문화체육관광부의 마지막 글자 ‘부’를 쓰게 되었네요. 그 전까지는 실감하지 못했는데 얼마 전 7기를 뽑기 위한 2차 면접을 가고 나서야 비로소 6기 활동이 끝났다는 사실을 몸소 느꼈던 것 같아요.


▲진심으로 부럽습니다, 7기 분들. 웰컴 투 더 헬(Welcome to the hell)입니다.


이미 지난 27일 있었던 7기 워크숍을 통해 7기 기자단과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그 때 모든 분들과 얘기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그들 뿐 아니라 이 글을 읽고 있을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제가 2년 동안 휴학하면서 가끔 서울에 올라와 친구들을 만나면 다들 취직 준비에 여념이 없었어요. 저 역시 복학을 하면 그래야만 하는 걸까 고민하고 있는 찰나에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 모집 공고를 접했고 마지막까지 대학생만의 젊음과 열정을 즐기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저는 그 때의 제 결심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무얼 하든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니 대학생 여러분, 청춘을 맘껏 즐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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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새해가 찾아왔다. 한해를 시작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한 살 더 먹는 슬픔일 수도 있고 수능을 본 학생들에게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 학기를 앞둔 나에게는 고생과 환희의 해가 아닐까 싶다. 취업에 많은 이들이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나는 걱정 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그것을 위해 오늘도 바쁘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마치, 그 꿈을 위해 인고의 세월을 보낸 위인을 말하는 듯 보이지만 부끄럽게도 그 기간은 채 1년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염원이 강하다. 내 꿈의 시작은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 기자단이라는 소중한 만남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픔을 논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세요.



2010년 12월, ‘아프니까 청춘이다. (저 김난도)’가 출간되어 세상을 들썩이게 했다. 취업, 연애, 학업 등의 아픔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는 이 시대 청춘들의 어깨를 감싸주며 말 못 할 아픔을 치유해줬다. 나도 출간되자마자 이 책을 사 읽었다. 소감이 궁금할 것이다. 난 거짓말은 못하겠다. 내가 읽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그냥 그랬다. 왜냐면 나는 별로 아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고? 아픔은 무엇을 절실히 노력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전유물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매일 편지를 쓰고도 냉랭한 거절의 말을 들은 남자. 학점, 토익 성적 등 소위 스펙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을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공부해왔건만 취업이 되지 않아 슬퍼하는 이들의 것이다. 애석하지만 나는 둘 다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사는 대학생이었다. ‘대기업에 다니거나 공무원을 하면 되겠지.’의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솔직히 아파할 자격조차 없었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어리석음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무언가에 미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그러던 중 내게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 기자를 알게 되었고 아무것도 없는 나였지만 과감하게 도전했다.


문화부 대학생 기자가 되고 싶다는 내 목표가 생기자 나는 열정적인 사람으로 바뀌었다. 문화부와 관련된 신문기사부터 정책분석까지 모두 조사했다. 생각보다 문화부는 많은 일을 하고 있었고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공부를 거듭할수록 나의 관심은 <관광>에 쏠렸다. 평소 여행과 사람 만나기를 좋아했던 나와는 찰떡궁합이었다. 관심은 곧, 나를 몰입하게 했고 합격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는 지극히 평범한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맛보게 해줬고 비로소 내게는 아파할 자격이 생겼다.



문화, 체육, 관광. 대학생 기자. 그리고 소중한 인연들



대학생 기자로서의 첫걸음. 낯설었지만 매력적이었다. 특히, 20대 청춘이라면 누구나 관심 있어 하는 분야가 문화, 체육, 관광 아니겠는가. 이를 두루 경험할 좋은 기회였다. 나는 관광에 관심이 있었지만 하나에만 치중하려 하지 않았다. 융·복합 시대, 가능하면 다양한 것을 경험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부딪쳐 봤다. 수많은 현장에 함께 했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한 가지, 한국을 사랑하고 알리기 위한 삶을 꿈꾸는 내 목표는 잊지 않으려 했다.

 


한글. 세계의 디자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


▲이상봉 디자이너(좌측 상단)와 그의 작품 Ⓒ정병화


내 첫 번째 인터뷰이자 잊지 못할 분은 이상봉 디자이너였다. 내가 굳이 서술하지 않아도 너무나 유명한 분이다. 한글을 옷이라는 캔버스에 그린 세계적인 분이다. 매일 읽고 쓰는 한글이지만, 공기처럼 너무 흔해 자칫, 그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이상봉 디자이너는 이를 세계적 아름다움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의 한글 사랑은 대단함을 넘어 경이로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한 말은 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한국적인 요소를 애써 찾아내려 하지 마라. 늘 우리 곁에 함께 하고 있는 것부터 관심을 두어라.’ 내 시야는 더 넓고 우리 문화에 대한 내 사랑을 깊어졌다.



2012 런던 올림픽. 한국의 위상을 드높여라.



2008년 아테네 올림픽. 이용대, 이효정 선수의 배드민턴 혼합복식 경기를 보았다. 모두가 염원하던 금메달을 획득했다. 뛸 듯이 기뻤다. 단상 위의 태극기와 함께 울려 퍼지는 애국가는 내 마음에 진한 감동을 줬다. 이들은 배드민턴이란 스포츠로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했다. 나는 이들을 꼭 만나보고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용대 선수를 만났다. 코트 위 멋진 스매싱을 하던 청년은 생각보다 수줍었다. 자신은 유명인이 아니라며 그냥 평범한 운동선수라며 해맑게 웃었다. 정점에 올라섰던 그였기에 자칫 거만할 거로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번, 정상의 자리에 서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그의 노력, 열정이라면 2012년 런던올림픽도 문제없어 보였다. 이용대 선수는 내게 끊임없는 열정을 가르쳐줬다.



이제는 천만 관광의 시대가 열렸다.


▲경주에서 열린 <2011 UNWTO>현장은 관광전문가를 꿈꾸는 제게 잊지못할 경험을 선물해 줬습니다. Ⓒ정병화

2011년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 수가 약 천만여 명이다. 물론 미국의 뉴욕이나 그리스 아테네에 비하면 아직은 작은 숫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장률만 비교한다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제 한국은 관광에서 주변국이 아니다. 세계관광을 주도하는 국가로서 자리 잡았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천년고도 경주에서 열린 <2011 UNWTO 총회>였다. 영광스럽게도 대학생 기자의 자격으로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각국 관광장관을 비롯해 많은 취재진이 함께했다. 이런 국제적 행사가 한국에서 열리다니 왠지 뿌듯했다. 모두 다른 얼굴색,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었지만 관광에 대한 생각은 하나였다. ‘관광은 친환경적인 경제 성장의 동력이고 즐거움을 주는 산업’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한 자리에 함께 했다는 것 자체로도 내 가슴은 벅찼다. 훗날, 이곳에 함께 하고 싶다는 들었다. 대학생 기자가 아닌 관광을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이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려 합니다.



지난해, K-팝 덕분에 한국을 찾는 관광객 수가 급증했다. 올해는 한국(KOREA)의 ‘K'와 문학을 뜻하는 영어 줄임말 'Lit(literature의 줄임말)의 합성어인 ‘K-릿’ 열풍이 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이 떠오르는 한류의 동력원이다. 하지만 우리는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인 도심 속 5궁(경복궁, 경희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을 비롯해 각지에 있는 문화유산이다. 우리의 문화를 소중히 하고 외국인에게 알리려는 본질적 노력 없이는 지금의 한류는 한낮 유행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공존과 협업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한국은 세계 속에 우뚝 설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미비하나 노력할 것이다. 그 와중에 아픈 순간이 올 것이다. 이제 나는 아파할 자격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아픔마저 사랑할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문화부 대학생 기자단이 중심에 있었다. 아픈 청춘들이여 문화부 대학생기자단으로 아픔을 이겨나가라고 감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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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영선수들이 일반인 보다 물 속에서 빠른 이유는 물을 잡고 다니기 때문이다! (전국체전)



물은 손에 잡힐까? 상식적으로 물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라는 속담에서 보듯 물은 손에 잡히지 않으니 궁색하나마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물을 잡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수영선수들이다.


지난 1년 동안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인터뷰하고 여러 정책 현장에도 찾아갔지만 내게는 유난히 수영과 관련된 기사가 많았다. 경영, 핀수영, 싱크로나이즈스위밍 등 엘리트 선수들은 물론이고 감독까지 인터뷰했다. 또 수상안전요원 면허시험장, 전국체육대회 현장 등 파란 타일 바닥이 익숙해질 정도로 수영장에 자주 찾아갔다.


▲ 노민상 감독, 핀수영팀, 박현선·학현하 싱크로 자매, 수상안전요원, 정다래 선수, 핀수영 선수 등


수영을 업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만났을 때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그들은 모두 물을 잡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를 ‘물감感’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들은 물을 잡고 다니기 때문에 일반인들보다 훨씬 빠르고 쉽게 물속에서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평생을 수영한 선수들도 단 몇 개월의 공백 기간 후에는 물감을 잃게 된다고 입을 모았다. 즉 잠시라도 수영에 소홀했다면 물을 잡는 ‘특수 능력’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수영 국가대표 최혜라 선수는 하루에 12,000m를 물속에서 다니며 수영장이 닫혀 있을 때가 아니라면 단 하루도 빠진 적이 없다. (2012년 1월 25일자)


▲ 사진3 최혜라 선수 사진


“1년 중에 빨간 날(휴일)을 제외한 날은 모두 물속에 들어간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최혜라 선수는 자기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최혜라 선수가 수영을 하는 것만큼 나는 내 꿈을 향해 노력하고 있는가? 내 자신에게 솔직해지자면, 나는 내 꿈을 위해 최혜라 선수만큼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수영선수가 풀장에서 하루에 팔을 젓는 횟수가 대략 6,000 번에 이른다(접영기준). 최혜라 선수는 하루에 약 6,000번씩 물을 잡아낸 결과 국가대표에 이를 수 있었다. 꿈을 향해서라면 수영선수가 팔을 젓듯 자기분야에서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수영선수를 통해 더 분명히 다가 왔다.


이런 수영 선수들의 물감 이야기는 손에 잡히지 않는 꿈을 잡으려는 내게 중요한 메시지로 다가왔다. 나는 대학 졸업 후 언론인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까지도 언론인이 되는 길은 저만치 멀게만 느껴진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꿈은 잘 잡히지 않는 ‘물’ 같은 대상으로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분명 물을 잡는 수영선수처럼 꿈을 잡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꿈을 잡는 선수들은 물을 잡는 선수들처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꿈감感을 아는 것이다. 내가 지난 1년간 기사를 위해 만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분야에서 꿈을 이룬 사람들이다. 화가, 개그맨, 연기자, 운동선수, 정치인 모두 자신의 꿈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심지어 석창우 화백은 두 팔을 잃고도 화가라는 꿈을 놓지 않고 끊임없는 노력을 했다.(2011년 4월 11일자)




그래도 내게 희망적인 것은 지난 1년간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 활동은 내 꿈을 향한 하나의 ‘물 잡기’였다는 사실이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전혀 친분이 없는 낯선 인터뷰이를 대하는 내 모습이 점점 자연스러워졌고 대하기 어려운 사람들 앞에서도 내가 원하는 질문을 할 여유를 갖게 됐다. 지금까지 내가 쓴 기사를 돌아보면 부끄러운 것도 있지만 그런 후회마저도 언론인으로 크기 위한 훌륭한 자양분이 됐을 거라 믿는다. 기자단 활동처럼 언론인을 향해 나의 노력이 꾸준히 이어진다면 수영선수가 물을 잡고 헤엄치듯 나는 내 꿈을 손에 잡아가며 나아가는 기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5,999번의 ‘물 잡기’가 남았다. 앞으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이고 숱한 도전과 실패를 경험할 것이다. 하지만 내 꿈을 향한 노력들로 몇 년 뒤에는 스스로 '꿈을 잡을 수 있는 선수’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지난 1년 동안 수영과 관련된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도와준 수영선수 여자 친구에게 이 공간을 빌어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http://culturenori.tistory.com/2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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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달릴 수 있는 참 많은 길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스마트폰에 교통정보를 알려주는 어플도 있어서 막히지 않는 길만 골라서 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젊고 젊어 지치지도 않은 대학생들은 왜 좁은 술집에서만 달리는 걸까요? 전국 곳곳을 달리고 싶은가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을 달리고 싶은가요? 다른 대학생들과 함께 달리고 싶은가요? 아니면 진짜 그냥 달리고 싶은가요?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달린 제 청춘의 사계절을 소개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 기자단’이라는 HI-PASS를 넘겨드립니다. 놓치지 마세요.



1번 도로-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 돌아올 때는 더 풍성한 길



문화부 기자단이라는 HI-PASS는 사람들 그 것도 유명한 사람들로 통하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렘이 가득한 길이었습니다. 또 에너지를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의 경험과 삶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저에게 때로는 도전정신을, 때로는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사람으로 향하는 길 중 가장 좋았던 시간은 꼽으라면 TV에서 보는 게 더 익숙했던 최 희 아나운서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때 인터뷰 할 때에는 긴장도 하고 당황해서 느끼지 못했었는데 돌아와서 사진을 정리하면서 ‘아 이렇게 예쁜 사람도 만날 수 있고 기자단 하길 정말 잘했었다’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손진영 형이랑 태권이를 만났을 때도 그들의 열정에 감동했던 기억이 남고 강광배 감독님을 인터뷰했을 때 큰 도전을 받았던 것도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2번 도로 - 혼자라면 못가 봤을 길, 문화부대학생기자였기에 가능했던 길



IRIS, 7급공무원, 의형제, 아테나 등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연상되는 곳은 어디인가요? 바로 ‘조국을 위한 무명의 헌신’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국익을 위해 애쓰는 국가정보원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런 국정원에 문화부 대학생기자였기에 초청을 받아 실탄사격도 해보고 드라마에서나 보던 최첨단 상황실에도 들어가 볼 수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정말 HI-PASS라고 불러도 과하지 않은 것 아닌가요?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4강신화가 시작된 ‘파주 국가대표 축구트레이닝 센터(NFC)'에도 들어가서 박지성 형님이 밟았을 잔디에서 뛰어도 볼 수 있었죠. 게다가 제주도만큼 아름다운 섬 백령도에도 초청을 받아 방문할 수 있었고 부천판타스틱 영화제는 ‘PRESS카드’를 받아 남자의 로망 아오이 소라를 비롯해 김하늘, 박보영 등을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는 특권 아닌 특권을 가질 수 있었답니다. 지금 돌아보면 문화부 대학생 기자 1년을 하지 않았다면 경험해보지 못했을 일들을 참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3번 도로 - 함께 있을 때 우린 두렵지 않았다. 기자단과 함께 가는 길



아무리 좋은 길이라도 혼자가면 재미없는 길이겠지요. 옆에서 재잘재잘 떠들어주는 친구도 있고 달리다 힘들면 어깨 주물러 주면서 위로해줄 수 있는 그런 친구들과 함께 하는 길이 정말 즐거운 길이겠지요.


문화부 대학생 기자단과 함께 한 사계절 동안 우리 기자단 6기는 정말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북촌한옥마을에서 하계 워크샵을 하면서 제작한 한옥마을을 홍보하는 문화부 날라리UCC, 대외활동 박람회인 UNIV EXPO에서의 부스가 폭발할 정도의 인기까지.

문화부 기자단이라는 이름아래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즐겁고 행복한 길을 함께 달릴 수 있었습니다.



4번 도로 - 고속도로를 빠져나가는 톨게이트 앞에서



지난 일 년 동안 때로는 마감에 쫓기고 인터뷰이와 연락이 되지 않아서 힘든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제 자신은 더 튼튼해진 것 같습니다. 시간 관리를 하는 법을 배웠고 아직 부족하지만 글로 제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웠고 간접적이지만 정부부처가 어떻게 운영이 되는 지 알 수 있었습니다. 평범한 대학생이라면 이야기 한 번 해보기 힘들었을 장관님, 차관님과 식사도 하고 막걸리도 마시며 인생의 조언을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 기자단 이라는 고속도로에서 내려오고 문화부 기자단이라는 HI-PASS를 7기에게 넘겨주려고 합니다. HI-PASS라고 표현을 했지만 본인의 열정과 수고가 없다면 문화부 기자단이라는 명함은 단순히 이력서에 한 줄을 더해 줄 경력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런 것을 원하신다면 그냥 편하게 시키는 대로만 활동하면 되는 다른 활동을 하시는 게 좋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정말 달리고 싶은,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보고 싶은, 사진에 생생함을 더 할 수 있는 열정이 있는 그런 청춘들은 절대 주저하지 마세요.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마지막 순간에 죽어가는 신세경을 두고 장혁은 “주저하지 마라”라는 스승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훈민정음 혜례본을 가지고 반포현장에 가서 성공적으로 훈민정음이 반포될 수 있게 했잖아요. 죽어가는 담이(신세경)의 심정으로 지원서를 쓰고 주저하지 않고 면접장으로 장혁처럼 달려온다면 문화부 기자단이라는 HI-PASS는 여러분의 손에 주어질 것입니다.


http://culturenori.tistory.com/2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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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강신청은 전쟁이다. ⓒsk 텔레콤 대학생 블로그 기자단



바야흐로 다시금 찾아온 개강 시즌. 제 주위의 모든 이들은 입을 모아 “Ah, 한 1주일만 더 있었으면...", "Ah, 또 개강... 어떻게 학교 다닐지 걱정 된다...”, AhAhAhahah 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그 ‘개강’에 앞서서 꼭 깨야할 첫 번째 퀘스트! 수.강.신.청. 동기고 선배고 없는! 소리 없지만 피 튀기는 살벌한 전쟁! 여러분은 그 속에서 자신의 앞가림을 잘 하셨는지요? 이 글은 편안한 한 학기의 첫 단추인 ‘수강신청’에 대한 저의 짧은 투덜거림입니다. 쉴 새 없이 징징대고 투정부릴 저의 이야기.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 수강신청


정해준 시간표대로만 지내왔던 중학교, 고등학교와는 달리 ‘성인’이 된 대학생들은 자신이 배울 과목을 직접 선택하고 조합하여 시간표를 짠다. 이 시간표를 토대로 수강한 과목들을 신청하는 일련의 과정을 수강신청이라고 한다. 알차고 편안한 한 학기를 위해서는 수강신청이라는 전쟁에서 승리하여야 한다.


 


▲수강신청은 편안한 한 학기의 첫 단추이자 밑천이다.



나의 첫 대학생활의 즐거움을 가로막은 수강신청


2006년 저는 꿈에도 그리던 대학교라는 곳의 합격 통보를 받았지요. 저는 다른 친구의 합격 파티에서 합격 통보를 받고는 누구보다 더 합격의 기쁨이 달았답니다. 그 당시를 잠깐 회상해보면 목이 찢어져라 노래를 부르고 그 다음 날에 목이 퉁퉁 부었던 것 같네요. 그리고 풋풋했던 OT를 즐기고 특유의 붙임성과 오지랖으로 누구보다 더 선배님들과 더 친해졌지요. 그리고는 엄청난 이야기를 들었어요. 바로 대학생활 첫 번째 전쟁인 ‘수강신청’의 무서움이었어요. “1~2분간의 수강신청이 작게는 너의 한 학기를 크게는 너의 대학생활 자체를  좌우할 지어니 부디 신중하고 스피디하게 처리하라” 겁먹은 우리 신입생들은 바뀐 교과 과정으로 특별한 수강신청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교의 말에 안심을 했지요. 이윽고 시간이 지난 후, 우리를 맡아주셨던 조교님은 다소 초짜셨나 봐요. 바뀐 교과과정에 따라 ‘핵심교양’을 반드시 이수하여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고 다른 ‘교양’ 과목을 이수하게끔 시간표가 나온 것이지요. 이 사건으로 우리 과 동기들은 학구열이 과하게 넘쳤을까요? 미리 구입한 전공 서적의 가격인 “3만원”에 뼈아픈 출혈을 맛보게 됩니다. 이렇듯 저는 신입생 첫 학기에 첫 번째 수강신청의 무서움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배우 박신혜도 수강신청에 실패하고 괴로워했다. ⓒ뉴스엔



한 번의 실수가 크게 돌아온다, 나비효과 수강신청대란!


여러분도 수강신청이 끝나셨겠지요? 어때요?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는지요? 저도 지나간 수요일에 3학년 2학기 수강을 신청했답니다. 결과는... 역시나 3학점이 “빵꾸”났지요. 도대체가 제대로 된 승리를 거둔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3학점이면 다소 선방한 수준이랍니다. 저번 학기 첫 번째 수강신청에서는 전 세계 최초 ‘주일파‘ 대학생이 탄생할 수 있었답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저는 메모장에 수강코드와 분반을 미리 입력해두고 복사-붙여넣기를 하는 ’복붙 필살기‘를 구사하였는데요. 가장 인기가 많은 과목의 분반을 잘못 입력해 두어서 첫 스타트부터 꼬였답니다. 당연히 그 꼬임이 엄청난 혼란을 몰고 왔고요. 전공 2과목만 딸랑 성공. 무려 5과목이나 실패했었던 저번 학기 첫 번째 수강신청. 그 날 하루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이 곳 저 곳에 하소연을 하고 징징대는 저에게 친구들이 화도 내는 등 최악이었어요. 물론 이렇고 저렇고 해서 겨우겨우 19학점을 맞추어 만족스러운 한 학기를 보냈습니다. 물론 제가 편하자고 고른 과목과 시간표 때문이지만요.


▲ 엄청난 고난이 뒤따르는 시간표 짜기. ⓒ강원철



신입생들은 졸업학점에 대해 확실히 알아두어야 한다!


저는 정보 부족과 안일한 태도로 졸업학점의 개념을 모르고 피를 본 대표적인 케이스랍니다. 저는 군 제대를 한 2학년 1학기 이후에야 겨우 “계절학기”의 참 의미와 낮은 학점을 보완할 수 있는 ”재수강”의 의미를 깨달았지요. 물론 우리 때부터 바뀐 “필수교양”과 “핵심교양”의 필요 학점에 대해서도요. 2학년 2학기 수강책자를 보고는 엄청난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핵심교양”의 경우, 자리가 빨리 차기 때문에 한 학기에 한 과목 이상 이수하기 힘들다는 동기의 말 때문이었지요. 저는 엑셀에 “졸업학점 이수 프로젝트“를 만들어 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가히 충격이었어요. 졸업 전까지는 가히 불가능에 가까운 시간표였습니다. 이번 수강신청도 실패로 1차 전쟁을 마무리하면서 맘이 복잡하답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은 부디 대학교 생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시면 저 같이 어이없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 수강책자를 꼼꼼히 읽어 피 보는 일이 없도록 하자. ⓒ강원철



요리 조리 머리 굴려 봐도 결국 제자리


최근에는 이 수강신청에 대한 다양한 설과 프로그램이 난무한답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서버가 학교에서부터 열리기 때문에 학교 실습실에서 성스러운 수강신청을 하라”는 등이 그것인데요. 그 외에도 학교 서버시간 확인하기 사이트(http://time.navyism.com/), 수강신청 매크로 등의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존재한답니다. 하지만 섣부른 사용은 금물! 사용법을 잘 숙지하신 뒤에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 서버시간 확인하는 사이트 ⓒ강원철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 패자부활전, “수강정정”이 남아있다


수강신청에 실패하셨더라도 희망을 잃으면 안 되죠. 우리에게는 수강정정이라는 패자부활전이 있으니까요. 저도 내일 10시. 제 3학년 2학기의 운명을 건 수강정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귀차니즘’ 때문에 아직 실패용 시간표를 만들지 못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요. 서둘러 수강책자를 펴고 다시 “1 대 3학년 전체 학생“과의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해야겠네요. 대학생 여러분들도 건투를 빌겠습니다! 우리 학교 3학년만 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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