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하늘의 스포츠 인사이드] 벤쿠버 동계올림픽 특집 ② 쇼트트랙
쇼트트랙은 111.12m의 트랙을 도는 순간 예술이다.
빠른 판단력과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종목이다. 강한 체력에다 섬세함과 정교함이 필수 요소다. 400m 트랙을 도는 스피드 스케이팅이 서양 선수들의 전유물이었다면 아기자기한 쇼트트랙은 동양 선수들이 판을 주도했다. 역대 올림픽에서 한국은 '쇼트트랙 왕국'으로 불려왔다. 만일 우리에게 쇼트트랙이라는 '효자종목'이 없었다면 동계올림픽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는 장면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European Short Track Speed Skating Championships Sheffield 2007 by johnthescone  |
한국이 그동안 동계올림픽에서 수확한 메달은 금메달 17개, 은메달 8개, 동메달 6개 등 총 31개다. 이 가운데 쇼트트랙에서 무려 29개가 쏟아져 나왔다. 특히 금메달 17개는 모조리 쇼트트랙이 수확했다. 한국은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김기훈의 2관왕을 시작으로 2006년 토리노 올림픽까지 5개 대회에서 한번도 거르지 않고 금메달 사냥에 성공했다. 이번 밴쿠버 올림픽에서도 국민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이유다.
역대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메달 현황?
| 대회 |
금 |
은 |
동 |
| 92년 알베르빌 |
2 |
0 |
1 |
| 94년 릴레함메르 |
4 |
1 |
1 |
| 98년 나가노 |
3 |
1 |
2 |
| 2002년 솔트레이크 |
2 |
2 |
0 |
| 2006년 토리노 |
6 |
3 |
1 |
| 합계 |
17 |
7 |
5 |
▶밴쿠버 쇼트트랙 대표팀 '역대 최약체지만 희망을 노래한다'
이번 대표팀은 역대 최약체로 평가된다. 선수단 구성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남자팀은 이호석(고양시청)-성시백(용인시청)-이정수(단국대)-김성일(단국대)-곽윤기(연세대) 등 5명이다. 여자팀은 조해리(고양시청)-박승희(광문고)-이은별(연수여고)-최정원(고려대)-김민정(전북도청)으로 구성됐다. 올림픽 무대 경험이 있는 선수는 이호석이 유일하다.
올림픽 무대 경험이 있는 유일한 선수 ‘이호석’
92년 김기훈을 필두로 채지훈-김동성-안현수(남자부), 2개 대회 연속 2관왕에 오른 전이경(여자부) 등 선배들이 출전할 때와 비교하면 중량감이 떨어진다. 특히 2006년 대회에서 남녀부 3관왕에 올랐던 안현수와 진선유가 지난해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대표 선발전이 올림픽 개막 10개월을 앞두고 조기 개최된데다 부상에서 갓 회복한 뒤 출전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낙마했다. 한국을 넘으려는 미국과 중국 등이 지난해 말에 선발전을 치른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들의 부재로 인해 AP통신은 밴쿠버 올림픽에서 한국의 쇼트트랙 금메달을 3개로 예상했다. 4년 전 대회의 절반이다.
이같은 평가는 오히려 선수들의 투지를 자극한다. 선수들도 이름값에서 떨어지는 것은 인정하지만 금메달을 향한 열정 만큼은 뒤지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믿는 것은 굵은 땀방울이다.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6시부터 훈련을 시작한다.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저녁 식사를 제외하고 꼬박 10시간 동안 훈련에 매달린다. 납 조끼와 모래주머니를 찬 채 빙판을 지치고, 강도 높은 웨이트트레이닝 등 단내나는 훈련으로 '현실의 벽'을 넘기 위해 달려왔다.
선수들은 "정말 힘들죠. 하지만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는다고 믿어요. 긍정적인 마음으로 경기에 나서 금메달을 획득해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겠다"고 자신감을 보인다. 비상을 꿈꾸는 그들이 아름다운 이유다.
▶남자팀 ‘쌍두마차’ 성시백과 이호석
남자팀의 선봉엔 이호석과 성시백이 선다. 이들은 가슴에 한을 풀기 위해 밴쿠버 올림픽을 벼르고 있다. 이호석은 그동안 안현수의 그늘에 가려 '2인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그에게 4년 전 올림픽은 아쉬움 그 자체였다. 비록 5000m 계주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1000m와 1500m에서는 안현수에게 밀려 은메달에 그쳤다.
남자팀 ‘쌍두마차’ 성시백과 이호석
하지만 이제 안현수는 없다. 그가 대표팀의 에이스다. 그는 올림픽 직전에 열린 쇼트트랙 월드컵 대회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그는 지난해 홈에서 열린 월드컵 2차대회에서 1000m와 15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3관왕에 올랐다. 기분좋은 올림픽 리허설이었다. AP 통신도 김연와 함께 그를 금메달 유력 후보로 꼽고 있다.
성시백의 마음가짐 역시 남다르다. 그는 2006 토리노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동료와 선배들의 활약을 TV를 통해 지켜봤다. “내가 저곳에 있어야 했는데...”라는 탄식과 함께 깊은 좌절감이 밀려왔다. 그는 운동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모색했다. 유학도 준비했다. 하지만 “이렇게 훌쩍 떠나면 비겁한 사람으로 남는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이왕 시작한 것 끝을 보자”며 마음을 고쳐먹고 빙판에 다시 섰다. 그리고 지난해 4월 대표선발전에서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성시백 선수
그의 목표는 한국 선수들이 껄끄러워하는 500m 종목을 제패하는 것이다. 스타트가 레이스를 좌우하는 이 종목은 94년 채지훈의 금메달 이후 16년간 한국 선수들에게 우승을 허락하지 않았다. 바로 이 점이 그의 승부근성을 자극했다. 그는 5명의 한국 선수 가운데 스타트가 가장 빠르다. 당일 컨디션에 따라 우승도 노려볼 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호석과 성시백의 경쟁자로는 아폴로 안톤 오노(미국)와 찰스 해멀린(캐나다)이 꼽힌다.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오노(28)는 풍부한 경험이 강점이다. 체력이 떨어진 것이 흠이지만 특유의 노련함이 돋보인다. 500m에서는 예전만 못하지만 1500m 등에서는 세계 정상급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해멀린은 홈팬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을 등에 업은 것이 무기다. 해멀린은 지난해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에서 성시백을 0.001차로 제치고 우승한 경험이 있다.
◇한국 쇼트트랙 경기일정
2010. 2. 14. : 남자 1500m 예선// 여자 500m예선, 3000m계주 예선
2010. 2. 18일: 남자 1000m 예선, 5000m 계주 예선// 여자 500m 결선
2월21일: 남자 1000m 예선·결선// 여자 1500m 예선·결선
2월25일: 남자 500m 예선// 여자 1000m 예선, 3000m 계주 결선
2월27일: 남자 500 예선·결선, 5000m 계주 결선// 여자 1000m 예선·결선
▶여자팀 '3000m계주 올림픽 5연패의 대기록 도전'
여자팀은 개인전에 나설 에이스가 솔직히 약하다. 무엇보다 여자 세계랭킹 1위는 왕멍(중국)의 벽이 워낙 높다. 우리로서는 2006년 토리노 올림픽 3관왕인 진선유의 부재가 아쉽기만 하다. 왕멍은 2006년 토리노 올림픽 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1000m와 1500m에서는 진선유에게 우승을 내줬다.
토리노 올림픽 이후 진선유가 부상으로 주춤하는 사이 왕멍은 여자 쇼트트랙계를 평정했다. 왕멍은 2008세계선수권과 2009세계선수권에서 2회 연속 종합 1위에 오르며 독주체제를 갖췄다. 2009∼2010시즌 국제빙상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시리즈 500m에서 4개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밴쿠버 올림픽 3관왕에 오를 유력 후보로 꼽힌 이유다.
쇼트트랙 여자팀
그러나 한국의 여전사들도 쉽사리 왕멍의 독주를 허락하지 않을 태세다. 우리 선수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종목은 여자 3000m 계주다. 이 종목은 94년 릴레함메르 대회 때부터 4회 연속 금메달을 휩쓸었다. 5명의 탄탄한 팀 워크로 올림픽 5연패의 위업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트랙을 27바퀴 도는 이 종목은 작전이 중요하다. 한국은 역대 올림픽에서 후미에 쳐져 있다가 마지막 3~4바퀴를 남기고 절묘한 코너워크로 치고 나와 번번히 상대의 허를 찔렀다. 이번 밴쿠버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은 서로의 눈빛을 주고 받으며 치고 나갈 타이밍 등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비책을 이미 수립해 뒀다. 여자 선수들은 "솔직히 걱정히 되지만 준비한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 여자 쇼트트랙에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는 말로 금메달에 대한 열망을 보였다.